[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인간의 본성을 닮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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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백송

백송은 인간 본성을 닮은 흰색 줄기로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충남 예산군 추사고택 근처의 백송.
백송은 인간 본성을 닮은 흰색 줄기로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충남 예산군 추사고택 근처의 백송.
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 백송은 껍질이 희어서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백송을 ‘흰 소나무’라 부른다. 백피송(白皮松)과 백골송(白骨松)은 흰 줄기를 강조한 백송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백송은 어느 정도 나이 든 나무의 이름일 뿐이다. 어린 백송의 줄기는 푸른색이기 때문이다. 백송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줄기가 흰색으로 변한다.

백송의 또 다른 특징은 리기다소나무처럼 한 묶음의 잎이 세 개라는 점이다. 백송의 학명에는 원산지 표기가 없지만 중국 원산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식물채집자 로버트 포천(1812∼1880)은 중국의 백송을 영국에 보낸 사람이었다.

우리나라의 백송도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1734년의 ‘갑인연행록(甲寅燕行錄)’을 비롯해 각종 연행록에는 백송이 자주 등장한다. 연행 사절단에 참가한 사람들은 중국의 백송을 보기 위해 따로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추사 김정희도 연행사절단으로 중국 베이징에 갔을 때 백송의 씨앗을 가져와 고조부 김흥경의 묘소 앞에 심었다. 현재 충남 예산군 추사고택 근처 고조부의 묘소에 살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106호 백송이 바로 추사가 베이징에서 가져온 씨앗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백송은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아주 선호한 나무 중 하나였다. 김정희가 백송의 씨앗을 밀수(?)한 것도 그만큼 백송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 조계사와 헌법재판소, 경기 이천 등 현재 수령 200년이 넘은 백송은 모두 천연기념물이다. 성리학자들이 백송의 매력에 빠진 것은 줄기의 흰색 때문이었다. 성리학자들이 유독 흰색을 사랑한 것은 이 색이 깨끗한 인간의 본성을 닮았기 때문이다. ‘중용(中庸)’ 1장 ‘하늘이 명한 것을 본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는 구절처럼, 성리학의 인간 본성은 하늘이 모든 존재에게 완전하게 부여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곧 창의성이다. 그래서 창의성은 안에서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지 밖에서 안으로 넣을 수 없다.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학문이며,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과정이 공부다. 성리학의 공부 대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었다. 그래서 백송은 성리학자들이 자신의 본성, 즉 창의성을 구현하는 공부의 대상이었다. 성리학에서 본성을 구현한 자를 성인(聖人)이라 부른다. 인간은 누구나 공부를 통해서 성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백송은 곧 성인의 길로 이끄는 희망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소나뭇과#백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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