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꽃은 우주의 무게로 떨어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15> 동백나무

동백나무는 수백 년이 흘러도 금방 심은 듯 늘 싱싱하고 그 꽃은 통으로 진다.
동백나무는 수백 년이 흘러도 금방 심은 듯 늘 싱싱하고 그 꽃은 통으로 진다.
차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 동백(冬柏)나무는 ‘겨울의 측백나무’를 뜻한다. 전통시대에 즐겨 사용한 동백나무의 이름은 산다(山茶), 즉 ‘산에 사는 차나무’였다. 산다는 동백나무의 잎이 차나무 잎을 닮아 붙인 이름이다. 일본에서 활동한 린네가 붙인 학명의 원산지는 일본이다. 유럽의 동백나무는 17세기 중국에서 수입한 영국 동백나무였다.

중국 명나라 ‘산다백운시(山茶百韻詩)’에는 열 가지로 동백을 예찬하고 있다. 첫째, 고우면서도 요염하지 않다. 둘째, 300∼400년이 지나도 금방 심은 듯하다. 셋째, 가지가 16m나 올라가 어른이 손을 벌려 맞잡을 만큼 크다. 넷째, 나무껍질이 푸르고 윤기가 나서 차나무가 탐낼 정도로 기운이 넘친다. 다섯째, 나뭇가지가 특출해서 마치 추켜올린 용 꼬리 같다. 여섯째, 쟁반 같은 뿌리를 비롯해 나무의 모습은 여러 짐승이 지내기에 적합하다. 일곱째, 풍만한 잎은 깊어 마치 천막 같다. 여덟째, 서리와 눈을 견딜 수 있어 사계절 동안 늘 푸르다. 아홉째, 꽃이 피면 2, 3개월을 난다. 열째, 물을 넣고 병에 길러도 10여 일 동안 색이 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남쪽 지역에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적지 않지만 전북 고창의 선운사와 전남 강진 백련사의 동백 숲은 내가 즐겨 찾은 곳이다. 수백 년이 지났어도 금방 심은 듯 늘 싱싱하다. 백련사의 동백나무 숲은 부모인 차나무와 함께 살고 있어서 가족의 숲이지만, 다산 정약용이 유배 기간 동안 백련사의 혜장 스님과 산책했던 곳이라서 역사의 숲이다.

이른 봄에 이곳을 찾으면 나무 밑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을 만난다. 동백나무 꽃은 통으로 떨어진다. 발걸음을 멈추고 동백나무에 집중하면 우주의 무게로 뚝! 뚝! 떨어지는 꽃을 볼 수 있다. 꽃은 우주의 무게로 떨어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주의 무게로 떨어진 동백나무 꽃은 바람에 결코 쉽게 날아가지 않고 오랫동안 보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래서 장렬하게 떨어져 뜨겁게 가슴 울리는 동백나무 꽃을 한 번 만나면 영원히 마음에 남는다.

동백나무는 동박새와의 만남으로 후손을 남긴다. 동박새는 잎이 풍성한 동백나무 숲을 무척 사랑한다. 동백나무가 곤충이 드문 계절에 꽃을 피우는 것도 동박새가 꽃가루받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동백나무와 동박새의 관계는 생존의 법칙이 경쟁이 아니라 공생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동백나무#겨울의 측백나무#산에 사는 차나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