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자신을 감추는 ‘방어기제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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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이글스의 ‘Desperado’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명절이라 가족이 모이면 안타깝게도 기쁘기보다는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서열이 높은 사람의 독재나 배려하지 않는 태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엇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경쟁과 비교와 질투 때문이기도 하죠.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힘겨루기를 하다가 큰 문제를 만들고, 상처를 주거나 무시하려는 의도가 없었던 말에 혼자 상처받고 분노하고, 작은 결핍 하나로 열등감과 질투의 늪에 빠지게 되곤 합니다. 과도한 경쟁심과 질투는 열등감 때문입니다. 열등감의 이유는 결국 “네가 참 좋다!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보다는 그 반대의 말을 더 듣고 자랐거나, 그 말이 잘 믿어지지 않는 일들을 더 많이 겪었기 때문이죠. 열등감에 찌든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방어를 합니다. 가장 심한 경우는 사회적 철퇴죠. 길을 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거나 비난하는 것 같으니까요. 가족들도 못 믿겠기에 자기 방 안에 깊은 굴을 파고 숨습니다. 그보다 좀 덜하면, 싸워도 어차피 질 것이니까 아예 포기하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택합니다. 시키지 않아도 풍경이나 지나가는 사람 역할을 하죠. 과도하게 눈치를 보고, 자기주장을 못 하고, 작은 부정적 반응에도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아예 얼어붙어 버리곤 합니다.

그보다는 덜해서 자신의 못난 모습을 감출 수 있겠다 싶으면, 여러 전략과 전술을 사용해서 ‘못나지 않은 척’을 합니다. 더 나아가 ‘잘난 척’을 하기도 하죠. 완벽주의적이거나, 고집스럽거나,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이거나, 거만하거나, 명령적이거나, 위협적인 가면은 상대방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이 잘나거나 강하게 보이려는 도구입니다.

반면 ‘쿨’하거나, 유혹적이거나, 현학적이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자상하거나, 너그러운 가면은 자신의 비교적 잘난 일부분을 과도하게 내세워 못난 부분들을 가리려는 연막전술의 도구입니다. 이런 방법은 타인들에게 피해보다는 득을 주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 역할을 매일 해야 하는 당사자는 괴롭죠.

열등감은 타인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어려움을 나누고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죠. 열등감에 찌든 사람들은 자신을 피해자라고 여깁니다. 문제가 자신을 향한 이 세상의 무시와 비난에서 시작된 것이고, 잠시 방심하면 타인들이 다시 나를 무시하고 지배할 것이라고 믿죠. 그래서 과거에는 필요했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방해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잘못된 ‘방어기제’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현실 감각을 잃은 사람이죠. 건강한 사람은 무난하지만 꼭 해야 할 말은 하는, 별로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친근한 사람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Desperado’라는 노래에서 이글스의 돈 헨리(Don Henley)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죠. “네 앞에 참 괜찮은 것들이 있는데 넌 왜 늘 네가 가질 수 없는 것들만을 원하니? 언제 정신 차릴 거니? 비가 올 때도 있어. 하지만 그 후엔 무지개가 피잖아? 어서 문을 열어. 누군가가 너를 사랑할 수 있게 기회를 줘. 더 늦기 전에….”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글스#desperado#방어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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