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달에 비친 내 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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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이유 없이 잠시 밝은 달 옆에서 고개 들어 실컷 바라봄을 어찌 마다하리
無端頃刻뾚輪側仰面貪看豈敢辭
(무단경각빙륜측 앙면탐간기감사)

― 이곡 ‘가정집(稼亭集)’》
 

추석은 둥근 보름달과 함께한다. 언제나 추석이면 달을 보기에 좋은 날씨인지가 늘 사람들의 관심사가 된다. 지금의 달은 예전의 달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을 하고 있다. 이번 추석에 우리가 보는 달은 우리의 할아버지도 보았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보았던 바로 그 달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난히 둥글고 밝은 달을 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기도 하는데, 옛날 우리의 할아버지들도 추석의 달을 특별하게 대하며 많은 감상을 남겼다. 위의 글은 한 700년쯤 전인 고려시대에 이곡이 추석의 달을 구경하며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천리 멀리 떨어진 객지 타향에서, 예전의 달을 지금 사람들이 함께 보고 있네(他鄕異縣各千里 古月今人此一時)’라고 하면서, 그 달을 아무런 이유 없이 맘껏 바라보고 있노라고 하였다.

500여 년 전 추석의 달을 바라보는 감상은 어떠했나. ‘곱고 고운 열나흘의 달이여 중추절에 다다라 가득 차길 기다리네(嬋姸二七月 待滿近中秋) … 만리에 두루 환히 빛나서 밤새 누각을 내려가지 않누나(萬里淸輝遍 通宵不下樓).’ 조선 전기의 문인 서거정(徐居正)은 추석 하루 전날에 밤새 누각에서 내려가지도 않고서 차오르는 어여쁜 달을 감상하고 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것이 싫증나지 않듯이 밝은 달을 바라보는 것도 싫증나지 않는다. 아마도 무념의 상태가 되어 나는 사라지고 달만 남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추석의 달이 모든 이에게 아름다움만 전하는 것은 아니다. ‘고향에서도 함께 보고 있을 테니 온 집안이 잠들지 못하고 있겠지. 뉘라서 알리오, 서로 그리는 마음이 양쪽 모두 아득한 것을(故國應同見 渾家想未眠 誰知相憶意 兩地各茫然). 정도전(鄭道傳)이 유배지에서 바라본 600여 년 전 추석의 달은 고향에 있는 가족에 대한 아련한 마음을 비추고 있다. 내가 지금 객지에서 바라보는 추석의 달은 고향의 가족들도 바라보고 있을 바로 그 달과 다르지 않다.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마음을 함께하고 있다.

그뿐이랴. 추석의 달을 바라보며 점차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서글퍼하기도 하고, 밝은 미래를 생각하며 각오를 다지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 속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달은 여러 면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자전과 공전의 주기가 같아 우리가 볼 수 있는 달은 언제나 한쪽 면뿐이다. 오랜 옛날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동쪽 끝에서도 서쪽 끝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동서고금의 누구나 하나의 모습으로만 달을 보았다. 그러나 저마다 느끼는 감정은 모두 다르다. 조선 전기의 문인 성현(成俔)은 달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았던 것인가. 추석에 달을 보며 지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달을 보며 근심도 있고 즐거움도 있지만 달빛은 무심히도 밤마다 새롭기만 하네(人心見月有憂樂 月色無心夜夜新).’

달은 어쩌면 거울과 같아 나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움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리움을 보여주고, 서글픈 마음으로 바라보면 서글픔을 보여준다. 과거를 회상하면 옛일을 비추어주고 미래를 생각하면 앞날을 비추어준다. 이번 추석에는 어떤 모습의 달을 볼 수 있을까. 하늘을 올려다보기 전에 먼저 나의 마음을 돌이켜 가다듬으면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달의 모습이 어쩌면 그대로 하늘에 걸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곡(李穀·1298∼1351)의 본관은 한산(韓山)이고 호는 가정(稼亭)이다. 고려시대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였고, 원나라에 들어가서도 향시에 합격하여 그곳에서 벼슬을 지냈다. 문장에도 뛰어나 많은 작품을 남겼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아버지이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이곡#가정집#추석#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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