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이세형]이란과 사우디의 충돌 무대 된 이라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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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형 국제부 기자
이세형 국제부 기자
요즘 세계에서 한반도 다음으로 혼란스러운 지역을 꼽는다면 이라크일 것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과 잇따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 발사 등 전략도발을 이어가지 않았더라면 세계의 시선은 이라크에 집중됐을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이유는 주권 국가를 갖지 못한 세계 최대의 민족인 쿠르드의 분리·독립을 위한 국민투표가 25일 열리기 때문이다. 이라크 중앙정부를 비롯해 이란과 터키 같은 주변 강대국들이 모두 쿠르드 독립 국가 건설을 반대한다. 쿠르드 분리·독립 국민투표에도 반대한다. 하지만 쿠르드자치정부(KRG)는 투표를 강행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또 독립을 위한 작업도 계속 진행할 방침이다.

‘쿠르디스탄’(쿠르드 독립 시 국가 명칭) 설립 움직임이 현실이 되면 이라크는 물론이고 다수의 쿠르드인이 거주하는 터키 등에서도 민족 갈등이 커질 수 있다. 이슬람국가(IS) 잔당 소탕 작전 등으로 여전히 정국이 어수선한 이라크를 다시 한번 크게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라크에서는 향후 중동 강대국들 간 충돌을 불러올 수 있는 또 다른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임을 각각 자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의 이라크 내 영향력 확보 경쟁이다. 사우디와 이란은 앙숙이다. 이라크는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한 일종의 중간 지대다. 그런 만큼, 두 나라 모두 이라크를 자국의 영향권 아래 두는 건 이득일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이란이 이니셔티브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란과 이라크는 국민 중 시아파가 다수라는 공통점에도 8년(1980∼1988년)간 전쟁을 치렀다. 중동 국가 중 인구 수, 교육 수준, 과학기술 역량이 단연 돋보이고, 자원도 막강한 이란의 부상을 두려워한 아랍권과 미국이 이라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전쟁 뒤 이란과 이라크는 공교롭게도 미국 때문에 가까워졌다. 미국은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면서 시아파를 중용했다. 당시 쫓겨난 이라크 내 수니파 무장 군인들은 IS에 대거 참여했고 IS는 제2의 도시 모술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해 결국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됐다.

이라크는 이란의 도움으로 겨우 IS와 맞설 수 있었다. 자국에도 위험 요소인 IS를 억제하기 위해 이란이 이라크를 적극 도왔던 것이다. 특히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를 적극 지원해 IS와 맞섰다. 이는 이란이 ‘테러와의 전쟁에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할 수 있는 근거다.

경제적으로도 이라크 내 이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은 약 66억 달러(약 7조5000억 원) 규모의 상품을 이라크에 수출했다. 이제 이란에서도 “이라크를 잃을 수 없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그러나 최근 사우디의 행보는 이란을 충분히 긴장시킬 만하다. 사우디는 올 2월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자국 외교장관(압델 알 주베이르)을 이라크로 보내 본격적인 관계 개선 작업에 나섰다. 1990년 ‘쿠웨이트 침공’을 계기로 폐쇄했던 이라크와의 육로 접경 지역인 ‘아라르 국경’을 다시 열기로 했다. 최근 하이다르 알 압바디 이라크 총리를 초청한 것도 의미가 있다. 압바디 총리는 전임자이며 친이란 성향이었던 누리 알말리키와 달리 이란에 대해 부정적인 편이다.

심지어 수니파 근본주의의 종주국이란 이미지에 안 어울리게 이라크의 유명 시아파 지도자들의 마음을 잡는 데도 공을 들인다. 사우디 ‘최고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MBS) 왕세자가 이라크 강경 시아파 성직자이며 반미 성향도 강한 무크타다 알 사드르를 올 7월 초청한 게 좋은 예다. 이란과 사우디가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무대가 되고 있지만 이라크는 약소국이 아니다. 중동 국가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며, 인구도 약 3900만 명으로 많은 편이다.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중동에선 드물게 1972년부터 전 교육과정을 무료로 지원했을 만큼 미래지향적인 면도 있었다. 이라크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갈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큰 이유다.

한국 역시 재건 사업과 원유 수입 같은 경제적 관계를 감안해 이라크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특히 한국은 책임 있는 국제사회 일원으로 2004년 전쟁으로 파괴된 이라크를 돕기 위해 ‘자이툰부대’를 파병한 경험이 있기에 더욱 이라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
#이란#사우디#이라크#이라크 국민#정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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