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판권의 나무 인문학]비어있음과 절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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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나무

대나무 성장기에는 하루 30cm씩 ‘우후죽순’ 자란다.
대나무 성장기에는 하루 30cm씩 ‘우후죽순’ 자란다.
볏과의 늘 푸른 대나무는 풀이면서도 나무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대나무는 세포를 불리는 목질소(木質素)가 거의 없어서 풀의 성질을 갖고 있지만 나무의 이름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나무라는 이름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대나무는 왕대를 비롯한 오죽, 해장죽, 죽순대(맹종죽), 이대, 조릿대 등을 총칭하는 이름일 뿐이다. 대나무의 중요한 특징은 마디(節)와 빠른 성장이다. 마디는 가지를 만들고, 빠른 성장은 속을 비게 만든다.

대나무의 마디와 마디는 진공상태를 만든다. 그래서 대나무는 불에 태우면 굉음을 울린다. 대나무가 타면서 내는 소리가 곧 폭죽(爆竹)이다. 오늘날까지 중국인들은 결혼 출생 명절 경축일 등의 경사와 장례 때 폭죽을 즐겨 사용한다. 폭죽의 소리가 악귀를 물리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의 이(이)족, 야메이(雅美)족, 투산(土山)족은 대나무가 타면서 나오는 소리에서 자신의 조상이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대나무의 진공상태는 ‘마술피리’ 같은 악기를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삼국유사’에는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불면 쳐들어 왔던 적군도 물러나고, 질병도 가뭄도 폭풍도 사라진다는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 즉 만파식적의 전설을 수록하고 있다.

하루에 30cm 이상 자라는 대나무의 빠른 성장은 우후죽순(雨後竹筍) 같은 단어를 낳았다. 죽순의 굵기는 곧 대나무의 종류를 결정한다. 대나무의 경우 죽순의 굵기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고 다만 위로 성장할 뿐이다. 죽순은 인간에게 별미를 제공했다. 중국 진(晉)나라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아들 왕휘지(王徽之)는 죽순 없이는 밥을 먹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대나무를 ‘자네(此君)’라 불렀다. 그래서 대나무는 ‘차군’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죽순이 대나무의 탄생이라면 대나무의 꽃은 죽음이다. 대나무는 뿌리로 번식하지만, 번식이 불가능하면 꽃을 피워 열매를 만들어 후손을 남기고 죽기 때문이다. 상상의 봉새는 대나무의 열매만 먹고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구 동구 동화사의 봉서루(鳳棲樓), 전남 담양군 소쇄원의 대봉대(待鳳臺) 주변에는 봉새가 앉는다는 오동나무(혹은 벽오동)와 함께 대나무가 살고 있다.

대나무의 마디는 절개와 절제를 상징한다. 푸르고 매끈한 대나무의 줄기는 절제의 산물이다. 절제는 성인군자가 꿈꾸는 모습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대나무#대나무 진공상태#삼국유사#죽순#우후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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