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윤창효]나는 이제 산으로 출근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농촌 시골로 갈 줄은, 산으로 갈 줄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산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제 겨우 5분 능선에 도달한 것 같다.

누구나 인생에 몇 번의 고개가 있다. 나 또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두 번의 큰 고개를 넘었다. 첫 번째 고개는 40세에 맞이한 외환위기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컴퓨터 업계는 젊었고, 젊은 나에게 너무나 좋은 기회를 줬다. 사업적으로 급속히 성장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 사태로 갑작스레 엄청난 빚더미에 앉았다. 다행히 컴퓨터 업계가 다시 살아나 빠른 시일 내에 금전적으로 회복했다. 또다시 ‘잘나갔다’.

그러자 찾아온 두 번째 고개는 7년 전 받은 위암 선고였다. 위 절제 수술을 하고 난 뒤 회복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업계가 사양사업으로 전락하며 심신이 매우 피폐해졌다. 젊은 후배들을 따라갈 수도 없었다. 은퇴를 준비할 때가 된 것이다.

마침 시골 고향의 부동산업자로부터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경남 거창군 고제면의 임야를 매매하라는 연락을 여러 번 받았다. 어느 목재업체는 산에 있는 나무를 팔아 달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산에 무엇이 있길래 이러는 걸까.

그러던 중 3년 전 한국산림아카데미에서 운영하는 산림 관련 교육과정을 알게 되었다. 첫해는 ‘산야초 재배 전문가과정’에 등록했다. 한국의 산야초는 200여 가지인데 현재 집중 재배되는 것은 10여 가지라고 배웠다. 이듬해에는 산림 전반에 대한 교육과정인 ‘산림 최고경영자(CEO)과정’에 등록했다. 유실수 및 조경수 재배, 산림복합경영, 임산물 가공, 산야초 재배, 야생화 재배 등 많은 분야를 학습했지만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건 어디부터인지 잘 몰랐다. 문외한이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받은 것이다.

산으로 출근하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40여 년 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해발 700m의 험한 숲에서 과연 그 무언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어쨌든 지난해부터 산마늘 재배를 시작했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 내년부터 산양삼 등 다양한 산야초를 키우고 산의 일부를 지역주민을 위한 체험학습장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아직도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산림청장을 지낸 조연환 한국산림아카데미 이사장께서 하신 말씀을 되새긴다. “산은 어머니 같아 모든 것을 품어 주고 한없이 베풀어 준다. 숲은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자식을 키우듯이 나무에 이름도 붙여 주고 관심을 가지고 숲을 지켜봐야 한다.”

숲에 미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산으로 출근해 내 인생 제3의 고개를 넘어가 볼 것이다.

―윤창효

※필자(59)는 서울에서 정보기술(IT) 업계에 종사하다 현재 경남 거창을 오가며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농촌#시골#고향#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