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이한일]동화마을의 작은 음악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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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가뭄이다. 올 들어 예닐곱 번 비가 내렸지만 매번 2∼3mm, 병아리 오줌이었다. 우리 옆 밭 옥수수는 잎 끝이 허옇게 말라간다. 작년 늦가을에 심은 오미자도 여러 놈 말라 죽었다. 다행히 나는 지하수를 파 놓아 틈틈이 물을 준 덕에 그럭저럭 버텼지만 어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만 같으랴. 이런 와중에 이번 주에 내린 비는 그야말로 단비였다. 비 예보에 이 밭 저 밭 난리다. 참깨 모종을 심고 비료나 영양제를 주느라 정신없다.

사실, 귀촌 처음부터 꿈꾸던 잔디마당에서의 작은 음악회를 6월 3일로 정하고 5월 초부터 가뭄과의 전쟁을 벌이면서도 차근히 준비했다.

마을 주민 50여 명과 서울 친구 50여 명을 초대하기로 하고 음악은 난타 공연, 하모니카 연주, 바이올린·첼로 연주, 뮤지컬 곡, 성악 팀과 기타 동아리 팀이 기꺼이 참여해 주었다. 마을회관에서 음식 도구를 빌리고, 어떤 친구는 바비큐, 다른 친구는 떡,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는 커피와 생수를 보내줬다. 마을분들은 겉절이, 오이김치, 취나물, 고사리나물과 직접 두부도 만들어줬다. 우리 부부는 할 일이 없을 정도였다.

참 좋은 사람, 고마운 사람들이다. 사람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나 보다.

음악회 때에는 익숙한 가곡이나 클래식, 7080 노래에 맞춰 모두들 손뼉 치고 춤도 추고 끝날 때까지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두 시간의 공연이 끝났을 때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지금까지도 주민들, 서울 친구들에게서 듣고 있는 황송한 찬사다. 재능 봉사를 해준 공연자들도 “분위기가 최고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때보다 기분이 더 좋았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라일락, 조팝나무, 홍매화로 둘러싸인 잔디마당에서 작약, 장미, 채송화, 매발톱, 패랭이꽃을 보면서 그날따라 더욱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열린 동화마을 작은 음악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여러 날이 지났지만 만나는 주민들마다 집들이 음악회 이야기다. 아직 나도 여운이 남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곤드레와 취나물만 나오는 시기라 도시 친구들에게 우리 마을 농산물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점이다. 현수막에 적었던 문구, 내가 썼지만 늘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우리가 지금 함께한다는 것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이한일

※필자(61)는 서울시청 강동구청 송파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강원 홍천으로 이주해 농산물을 서울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가뭄#귀촌#작은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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