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의 부고를 알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살아생전 “연기는 사라짐의 미학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연극계 원로배우 장민호 선생(1924∼2012)이다.
그의 유작은 작고 1년 전,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의 개관작으로 오른 연극 ‘3월의 눈’이다. 아내 이순을 앞서 보낸 80대 노인 장오 역을 맡았던 그의 연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무대 세트인 한옥 마루에 걸터앉아 그가 두 눈을 끔뻑거리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노년의 쓸쓸함이 진하게 전해졌다. 그저 장민호라는 배우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작품에 감정을 더했고, 울림도 더 컸다.
최근 고인을 다시 떠올린 건 배우 김영애의 부고 기사를 쓰던 날이었다. 장 선생을 떠나보낼 때만큼이나 충격적이고 안타까웠다. 어쩌면 배우는 남의 인생에 ‘세’ 들어 사는 존재일지 모른다. 다양한 캐릭터로 여러 인생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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