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박한규]김천 직장인들의 점심 식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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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삶의 공간만 지방으로 옮기는 것을 귀촌, 삶의 방편을 농업으로 바꾸어 이동하는 것을 귀농이라 한다면 나는 직장을 좇아 왔으니 그냥 이주라 하는 것이 옳겠다. 직장 생활 29년, 지금 세 번째 지방 생활을 하고 있다. 전남 여수와 경남 창원의 멋진 바다와 이곳 경북 김천의 아름다운 산과 들. 세 차례 지방 생활을 모두 큰 행운으로 생각하지만 김천 생활은 이전과 다른 ‘지방 직장생활’의 풍미가 있다.

몸담은 법률구조공단은 법률 상담과 소송 지원이 주 임무라 1000명의 직원 중 대다수가 국민의 편익과 접근성을 위해 전국 131개 사무소에 흩어져 있고 이곳 본부에는 70명 남짓한 인원이 기획과 관리 업무를 수행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변화 없는 반복이 직장 생활의 특징이라지만 그 속에도 반복되는 사소한 애환이 있으니 출퇴근과 점심시간이 그것이다. 대도시일수록 더욱 어려운 일이지만 김천에서는 상당히 해방될 수 있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란 음식물 섭취를 통한 물리적 에너지 충전과 휴식을 통한 정신적 에너지 충전을 의미하는데 1시간이라는 조건은 두 마리 토끼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곳 공단에는 조리시설을 갖춘 식당이 있다. 처음에는 업체에 운영을 맡겼는데 조리된 음식을 가져와 배식만 하다 보니 직원들은 만족스럽지 않았고 업체는 적은 인원 때문에 채산성이 낮아 서로 불편했다. 지난해 9월, 식당 운영 경험이 있는 지역 주부가 운영을 맡고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직원들은 ‘찐’ 밥이 아니라 ‘지은’ 밥을 먹게 되었고, 김치는 물론 모든 반찬을 손수 조리해 준비하니 소위 ‘집밥’ 같은 점심을 먹게 되었다. 특히 70%를 차지하는 혼자 사는 직원에게는 제대로 된 한 끼다. 올봄에는 직접 캔 쑥과 냉이로 봄을 끓여 주었고 알싸한 달래는 곤드레밥의 훌륭한 비빔장 재료가 되었다. 직접 뜯은 푸성귀에 직접 만든 둥굴레, 돼지감자, 우엉 차와 식혜도 심심찮게 준비된다.

지난해에는 사무실 옆 공터에 직원들이 재미 삼아 기른 고추, 고구마, 땅콩이 식탁에 올랐다. 올해는 몇 명이 아예 작당해 10분 거리에 있는 주말농장을 분양받았다고 하니 모두 기대가 크다. 또 해마다 초여름이면 경비아저씨는 직접 기른 자두를 두어 차례 돌리기도 한다. 건물 뒤뜰 농구장에서 종종 농구나 족구 경기가 벌어지면 한쪽에서는 으레 숯불을 피워 지역 명산 지례 흑돼지 고기를 굽는다. 싱싱한 상추와 깻잎, 파절임은 아주머니들의 찬조다. 나 같은 간부들의 호기로운 찬조출연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덤이다.

이게 사람 사는 거다. 부러우면 진 거다.

―박한규

※필자(55)는 서울에서 공무원, 외국 회사 임원으로 일하다 경북 김천으로 가 대한법률구조공단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귀촌#귀농#지방 생활#직장인 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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