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네 마음은 얼음…’ 겨울을 노래한 사연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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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티
 대학 시절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날이었고, 집에 돌아온 저는 늘 그랬듯이 라디오 전원부터 켰습니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토스티의 가곡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Non t'amo piu)’였습니다.

 음반도 갖고 있어 익숙한 노래였지만 가사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들었는데, 갑자기 이탈리아어 가사가 돋보기로 확대하기라도 한 듯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너의 마음은 얼음으로 되어 있으니(perch´e l'anima tua fatta `e di gel).’ 갑자기 코가 시큰하더니 눈물이 맺혔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빨리 꽃이 피어나는 봄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겠죠.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바로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추위와 얼음의 계절입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시에 구스타브 홀스트가 곡을 붙인 영국 캐럴 ‘음산한 한겨울에(In the bleak midwinter)’는 ‘눈 위에 눈이 쌓였구나/오래전, 음산한 한겨울’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래도 숭고함까지 느껴지는 이 노래는, 눈이 걷히고 이뤄질 찬란한 구원을 암시합니다.

 저는 일본 북부 홋카이도의 삿포로에 와 있습니다. 2015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의 리사이틀이 일본 팬들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궁금해서죠. 3, 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공연을 본 팬들이 이미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군요. 그가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들려준 쇼팽의 전주곡집도 한 곡 한 곡 번갈아 장조와 단조 곡이 교차하면서 봄꽃 같은 밝음과 얼음 같은 암울함이 번갈아 이어집니다.

 세상에 무한한 꽃의 계절이 이어질 수 없듯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얼음의 시절도 무한정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이 겨울도 살짝, 환경미화원과 재해대책 공무원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눈발의 추억만 남기고 어서 가버렸으면 싶습니다. 대형 출판유통업체 부도로 출판계의 친구들이 내뱉는 한숨 소리도 들립니다. 사회 여러 분야가 갖가지 악조건에 처한 불안한 신년 벽두이지만, 이 또한 빨리 사라지기를 기원합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토스티#루치아노 파바로티#너의 마음은 얼음으로 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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