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눈발 날리는 모습 떠오르는 패르트의 ‘칸투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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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보 패르트
아르보 패르트
 ‘소리가 높다’ ‘음이 낮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입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여러 번 떨리는 소리를 ‘높은 소리’, 적은 횟수로 떨리는 소리를 ‘낮은 소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리의 높낮이는 본디 땅이나 물의 ‘높고 낮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왜 우리는 주파수가 큰 소리에서 ‘높음’을, 주파수가 작은 소리에서 ‘낮음’을 연상하게 되었을까요?

 인류학자나 음악학자 일부는 옛날부터 큰 동물 발자국처럼 쿵쿵 울리는 소리는 ‘낮은’ 땅바닥에서 왔고, 날카로운 새나 날벌레의 소리는 ‘높은’ 하늘에서 왔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쓰이게 됐다고 말합니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높은’ 음부터 서서히 내려오는 멜로디는 분명 뭔가 서서히 떨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러시아의 대가 차이콥스키가 ‘떨어지는’ 멜로디를 즐겨 썼죠. ‘비창’ 교향곡 4악장 첫 주제가 대표적입니다. 무엇이 떨어질까요? 마치 사람의 고개가 떨어지면서 한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떨어지는’ 선율은 대개 비탄과 절망을 암시합니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1935∼)는 현악합주곡 ‘벤저민 브리튼을 기리는 칸투스(Cantus in Memoriam Benjamin Britten·1977)’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떨어지는’ 선율을 들려줍니다. 종소리와 함께. 처음 창백하다시피 여리게 시작된 현의 노래는 점차 강하고 세차지며 느려집니다. ‘라-솔-파-미-레-도-시-라…’ 마치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다가 차츰 세찬 눈발이 퍼붓는 듯한 느낌입니다.

 왜 이런 곡을 썼을까요? 이 곡은 작곡가 패르트 자신이 존경한 영국의 선배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이 별세하자 그를 기리는 뜻에서 작곡한 작품입니다. 차이콥스키에게 그랬던 것처럼, 현대의 작곡가에게도 하행(下行) 선율은 비탄과 애도의 이미지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 곡에서 ‘눈발’을 떠올린 사람이 저뿐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은 레오 카락스 감독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도 두 남녀가 재회하는 밤 장면에 이 음악이 흐르면서 눈발이 날립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아르보 패르트#벤저민 브리튼을 기리는 칸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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