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깜냥의 문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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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깜냥’이라는 우리말은 혀끝에 감기는 세속적 친근함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 우리 현실을 비추어주는 의미 깊은 개념어로 손색이 없습니다. 깜냥은 우선 ‘지니고 있는 힘’을 뜻합니다. 능력 또는 역량의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낼 만한 능력’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과업과 능력이 서로 응하거나 어울리는지 평가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말의 의미는 도덕적 문제에 연결됩니다. 과업과 능력의 상응 관계를 따져보는 것은 곧 ‘-답다’라는 문제에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다면 도덕적 비판을 받겠지요. 선생은 선생답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합니다. 기업가는 기업가다워야 하고, 공무원은 공무원다워야 하며, 통치자는 통치자다워야 합니다. 어떤 과업에 합당한 능력을 갖추고 그 일을 할 때 도덕적일 수 있습니다.

 사회 정치적으로 능력 또는 무능력의 문제는 항상 ‘깜냥의 문제’입니다. 우리 각자는 신이 아닌 이상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일정 분야에서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 뿐이지요. 그러므로 자신의 깜냥을 헤아리지 못하고 나서는 것은 민폐를 끼칠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럴 때는 무능력도 죄가 됩니다.

 물론 자신의 깜냥을 헤아리지 못해 잘못을 저지르는 일들은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이 사적 영역에서 일어날 경우에는 수습하고 반성해서 고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적 권력이 작동하는 영역에서는 커다란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깜냥을 헤아리지 않고 맡은 과업을 잘 해내지 못할 경우, 권력을 남용하고 과업을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유혹에 빠져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상실된 권력은 부정을 저지르고 부패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정치적 역량과 윤리적 덕성이 쉽게 분리될 수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입장은 흔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권력을 추구하는 권모술수의 정치를 주장했다는 마키아벨리도 견지했던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볼까요. “자신의 힘을 키워가고자 하는 욕구는 매우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것입니다. 유능한 자들이 이를 수행할 때 그들은 항상 칭송받거나, 적어도 비난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취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를 추구할 경우, 그것은 실책이며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일에 합당한 능력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뜻이지요. 다시 말해 수단 안 가리고 사악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깜냥을 헤아리지 못한 무능한 자의 변명이라는 것입니다.

 마키아벨리는 ‘비르투(virtu)’라는 이탈리아어로 통치자의 능력과 덕성을 모두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영어의 덕(virtue)과 같은 어원을 지닌 말입니다. 이 말의 고대 어원은 어떤 일을 ‘잘 해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과업을 수행하는 탁월성을 뜻합니다.

 마키아벨리의 통치론에서 이런 탁월성은 나라의 대소사를 해결하는 능력일 뿐만 아니라, 정당한 목적을 위해 주어진 조건과 상황을 통제하는 역량이자, 변화하는 세태를 꿰뚫어보고 위험 사태를 예방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통찰력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어려운 과업입니다. 권력 욕심에 자신의 능력을 가늠해보지도 않고 섣불리 나설 수 있는 과업이 아닙니다. 곧 통치는 깜냥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깜냥#마키아벨리#비르투#vir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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