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별들은 따뜻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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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따뜻하다 ―정호승(1950∼ )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별들은 따뜻하다.”
 
  이 말을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 어둠 속에 있어 보아야 한다. 둘, 추위를 알아야 한다. 셋, 우러러 별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 시인은 아주 추운 어둠 속에서, 오들오들 떨었던 적이 있었다는 말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런 온기를 얻을 수 없었다. 그는 가난했고, 죽을 것만 같았다. 두려웠고, 절망할 것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에는 ‘별’이 있었다.

 이 발견은 시인의 삶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이 된다. 별과 눈이 마주친 순간,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하늘에서 어떤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롱하고 찬란한 눈빛이 나를 지켜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시인은 어둠과 추위를 극복하게 된다. 그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시인은 외로움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있었다. 

 정호승은 따뜻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추운 날, 주머니 속에 넣어 둔 핫팩과도 같다. 핫팩은 작지만 우리 손을 녹여 줄 수 있다. 손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놓인다. 추운 시간을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오늘은 이 따뜻한 시를 꺼내, 당신의 찬 손에 쥐여 주고 싶다. 지금은 별이 없는 시대, 별이 가능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대. 별을 진짜 보았다는, 시인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손을 녹여 보자. 주머니 속의 온기가 하늘의 별이 되는 기적을 상상해 보자.
 
나민애 문학평론가
#정호승#별들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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