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나이 든 신하가 할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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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이 죽지 않았으니
전하께서는 결코 이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老臣不死 殿下決不得如此
(노신불사 전하결부득여차)

―성준(成俊·1436∼1504)

 
10여 년 전 1000만 관객으로 사극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왕의 남자’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폭군 연산군에게 당당히 바른 말을 외쳤던 광대 장생. 실제 역사서인 ‘연산군일기’에서는 연회 도중 공길(孔吉)이라는 광대가 연산군에게 ‘논어’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비록 곡식이 있다 한들 내가 먹을 수 있겠는가(君君臣臣父父子子 君不君臣不臣 雖有粟 吾得而食諸).” 결국 이 일로 공길은 곤장을 맞고 먼 곳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음란함에 거침이 없었던 연산군은 각지에서 기생을 뽑아 수많은 인원을 대궐에 들이고, 이를 관리하는 관청까지 두었다. 이러한 연산군에게 직언을 한 이가 어찌 공길뿐이었겠는가.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李肯翊)이 저술한 역사서인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 잔치 자리에서 연산군은 한 요염한 기생을 매우 가까이 하였다고 한다. 구체적인 행동의 묘사는 없지만 올바른 행동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이때 영의정 성준이 소리쳤다. “노신이 죽지 않았으니 전하께서는 결코 이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걸면서 외친 노신의 말에 연산군도 행동을 멈추었다. 이 일로 연산군은 겉으로는 그를 존중하는 체하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미워하여 훗날 그를 사형에 처하였다고 한다.

나이 들어서는 욕심이 많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한 행동들은 추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아무 역할을 하지 않고 방관자로 남아있는 것도 좋은 모습은 아니다. 쌓아온 경륜과 신뢰를 바탕으로 주위의 바르지 못한 것들을 바로잡고, 때로는 권력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면 폭군의 작은 행동 하나라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덕망 있는 노신의 역할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성준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연산군의 잘못을 바로잡는 데에 앞장서다가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사사(賜死)되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성준#연산군#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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