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하늘, 백성, 임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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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일 뿐이다(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천하지소가외자 유민이이)

―허균 ‘성소부부고(惺所覆부稿)’


‘홍길동전’의 작가로도 유명한 허균의 ‘호민론(豪民論)’이란 글의 첫 대목이다.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수재나 화재, 호랑이나 표범보다도 심한데,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백성을 업신여기고 심하게 부려먹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허균은 사람들을 세 부류로 분류하면서 위의 의문에 답을 하고 있다. 첫째,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항민(恒民). 둘째, 다 빼앗겨 탄식하며 윗사람을 원망하는 원민(怨民). 셋째, 겉으로 뜻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때가 되면 자신의 뜻을 실현하고자 하는 호민(豪民). 호민이 출현하여 한 번 크게 소리 지르면, 원민들이 모여들어 함께 소리 지르고, 이어 항민들도 호미, 창 등을 들고 따라와 무도한 이들을 내려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호민이 나타나지 않기에 윗사람들이 백성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에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하였다. 먹을거리는 백성들의 생존이 달린 가장 소중한 것이기에 백성이 하늘로 여기는 것이며, 이와 마찬가지로 임금은 백성이 없으면 나라가 없으므로 백성을 하늘로 여기는 것이다. 위정자와 백성 간의 관계 규정을 매우 잘 표현한 말이기에, 역대 임금들은 이 말을 자주 인용하였다. 하늘은 의지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늘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다. 이러한 하늘에 죄를 지으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獲罪於天 無所禱也·획죄어천 무소도야)

나의 잘못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하늘인데, 하늘에 죄를 지었으니 더 이상 기댈 데가 없는 것이다. 공자가 하늘을 곧장 백성과 연결지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임금이 백성을 하늘로 여겨야 한다는 말을 결코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위정자가 하늘에 죄를 지으면 허균이 말했던 ‘호민’이 다시 출현하지 않는다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허균(許筠·1569∼1618)의 본관은 양천(陽川)이고, 호는 교산(蛟山)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역모의 주모자로 몰려 사사되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성소부부고#허균#호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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