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진단]‘투명 경영’을 위한 조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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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원 산업부 차장
주성원 산업부 차장
대우조선해양의 전직 최고경영진이 최근 잇따라 구속됐다. 남상태 전 사장과 김갑중 전 부사장이다. 고재호 전 사장 시절인 2012∼2015년 대우조선 CFO를 지낸 김 전 부사장은 재임 중 회계 조작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남상태 전 사장은 지인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는데, 분식회계 지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검찰은 고 전 사장과 남 전 사장 시절의 분식회계 규모가 5조4000억 원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이지만, 지금까지의 수사 경과만으로도 대우조선이 정상적인 경영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대우조선은 조작된 재무제표를 근거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다. 금융권 피해가 10조 원이 넘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회계 조작은 국내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일본 전자업체 도시바에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2249억 엔(약 2조5188억 원·이하 현재 환율) 규모의 회계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엔론 사태도 분식회계의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에너지기업 엔론은 투자 실패 손실을 반영하지 않고 회계 장부를 조작한 사실이 들통 나면서 2001년 파산했다.

회계는 기업의 ‘투명 경영’과 ‘윤리 경영’ 현황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항목이다. 대우조선이든 도시바이든, 부정은 경영진의 윤리의식 결여에서 비롯한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은 어떻든 좋다는 식의 마음가짐이다.

이런 경영자일수록 잘못이 드러나면 대개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거나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대부분 비리의 이유는 사익(私益)이다.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거나 현재 자리를 좀 더 오래 보전하기 위해, 또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도 당장의 손실을 차기 경영진에게 떠넘기려 하거나, 조작된 이익으로 성과급을 받기 위해 자행됐다.

‘회사 이익 극대화’ 또는 ‘주주 가치 제고’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오히려 ‘착한 기업’ 주주의 수익률이 더 높다는 통계가 있다. 미국 윤리경영 전문기관인 ‘에티스피어 인스티튜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기업’(World‘s Most Ethical Companies·2016년 기준 131개 기업)의 지난해 주주 수익률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기업 평균보다 3.3% 높았다.

윤리 경영을 경영진의 양심에 맡길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경영 감시다. 앞서 언급한 기업들은 경영 감시 체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시바의 회계 부정이 7년 동안이나 이어진 것도 무능력한 감사위원회 때문이다. 감사위원회에는 회계를 전혀 모르는 외무성 출신 사외이사들이 포함됐다. 대우조선 역시 대주주인 KDB산업은행의 느슨한 감시를 틈타 제멋대로 회계 장부를 주물렀다. 외부 감사 기관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도 제 역할을 다 했다고 볼 수 없다.

끔찍한 것은 부정의 결과다. 한때 미국 7대 기업에 들었던 엔론은 파산했고, 엔론의 회계 조작을 묵인한 아서앤더슨도 공중분해됐다. 도시바는 2000억 엔(약 2조2240억 원) 감자설이 나오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대우조선에는 조작된 장부를 근거로 천문학적인 ‘혈세’가 공적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투입됐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와 관련된 경영진과 임직원, 그리고 이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 외부 감사기관과 산업은행 관계자에 대한 처벌 문제다. 현행법상 분식회계에 가담한 임직원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벌금 7000만 원 이하의 형사 처벌을 받지만 이를 최대치로 채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기업에 부과하는 과징금은 최대 20억 원이다.

이에 비해 제프리 스킬링 엔론 최고경영자(CEO)는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았다. 일본 증권거래감시위원회가 일본 정부에 권고한 도시바 과징금은 73억7350만 엔(약 826억 원)이다. 한국의 분식회계 관련 처벌이 선진국에 비해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근거다. 회계 부정이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회계 부정을 비롯한 기업 부정에 대한 처벌 수위 강화를 검토할 때가 됐다. ‘경영자의 양식’이나 ‘자율적인 경영 감시 체계’가 기업의 투명 경영, 윤리 경영을 보장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적어도 이를 강제할 만한 사회적 장치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주성원 산업부 차장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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