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춤추는 사상누각, 그 역설의 미학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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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변화는 종종 개념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변화를 앞세운’ 현대사회에 살면서도 그 변화를 일으키는 아이디어와 개념에는 무심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 삶과 밀접해서, 슬쩍 넘어가기에는 뭔가 손해 볼 일이 생길 것 같기도 합니다.

벌써 한 세대 이전에 디지털 문화가 우리 삶을 주도하면서 수많은 개념어를 일상에 들여왔지요. 정보와 지식, 가상현실, 지식기반사회,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쉬운 예로 “이 폰은 왜 ‘스마트폰’이지?” 하는 물음도 개념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이런 개념들은 우리 삶을 은근슬쩍 특별한 패턴으로 세팅해갑니다. ‘일상에서 철학하기’는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숙고하려 합니다. 이는 역사를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떼밀려 살아가기만 하는 게 아니니까요.

디지털사회가 시작되면서 유난히도 ‘지식’은 문명사적 변동을 설명하고 사회의 오피니언을 주도하는 ‘열쇠 개념’이 되었습니다. 더 멀게는 벌써 반세기 전 후기산업사회를 전망한 학자들이 경험을 넘어서는 지식을 강조했으며, 요리에 빗대어 재료에 대한 레시피로서 지식을 개념화함으로써 이미 소프트웨어적 성격의 지식을 부각했고, 지식기반의 창조적 문화를 경제경영에 접목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이 지식기반이란 개념을 숙고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지식이 삶의 기반이 되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나요? 고대로부터 다양한 지식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항해에는 수학·천문학적 지식이 필수였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사회를 특별히 지식기반의 사회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지식의 성격이 변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그 기반의 성질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한 번 인정받은 지식은 삶의 기반처럼 튼튼하고 오랫동안 변치 않았습니다. 마치 주춧돌이 집 전체를 긴 세월 동안 굳건히 받치듯 말입니다. 지식의 생명이 길었습니다. 지식이 장수하는 시대에 지식은 튼튼한 기반처럼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는 새로운 지식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개별 지식의 수명은 점점 더 짧아집니다. 지식기반사회는 자신이 기반으로 삼는 것이 항상 변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지식이 단명하는 시대에는 어이없게도 유동적인 것을 기반으로 삼는 역설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특별한 의미에서 지식기반사회의 실천은 인류에게 대단한 도전입니다. 유동적 기반의 ‘경쾌한 불안’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니까요.

전에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을 짓지 말라!’는 금언이 소중했습니다. 튼튼하고 변치 않는 기반 위에 누각을 지어야 하지, 모래처럼 유동적인 것 위에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그러나 이미 기반이 유동적인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기반을 능숙하게 제어하며 유연하게 ‘춤추는 사상누각’을 지어야겠지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런 도전은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하고 삶을 피곤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단명하는 시대에는 사람이 더욱 소중해진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이끼 낀 주춧돌같이 장수하는 지식은 생동하는 사람의 욕구와 능력을 은폐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지식이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소실되면, 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춤추는 사상누각을 위한 안무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래 위에서 춤추는 누각은 미학적 가치 또한 획득할 것입니다. 기막히게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디지털 문화#사상누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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