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여러 작곡가가 함께 만든 명곡이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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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우리가 아는 명곡들은 작곡가 혼자 창작한 것입니다. 이상하지는 않지만, ‘꼭 그래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옛 공산권에서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예술 작품을 만드는 ‘집단 창작’의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명작 또는 명곡이 있었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 창작한 명곡이 탄생할 뻔하기도 했습니다. 1868년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에 뚜렷한 획을 그은 로시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후배 작곡가인 베르디는 “작곡계 후배들이 한 악장씩 진혼 미사곡(레퀴엠)을 써서 로시니 영전에 바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제안자인 베르디 자신은 마지막 악장인 ‘리베라 메’(구하소서 주여)를 썼지만 계획에 찬동했던 다른 작곡가들이 차일피일 미루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르디는 훗날 이탈리아 문호 만초니의 죽음을 접하고 진혼 미사곡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서 ‘베르디의 레퀴엠’으로 발표했습니다. 오늘날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분노’를 과장해 표현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큰북 강타와 합창 소리가 바로 이 곡 중 ‘디에스 이레’(분노의 날) 악장입니다.

‘로시니를 위한 레퀴엠’은 계획만으로 끝났지만 실제 여러 사람이 함께 작곡한 곡도 있습니다. 이른바 ‘F-A-E 소나타’가 그런 예입니다. ‘F-A-E’는 계이름으로 파-라-미에 해당하는 세 음이면서, 독일어 ‘Frei aber einsam’(자유롭지만 고독하게)을 약자로 표현한 말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이 이 말을 자신의 표어로 삼았고, 작곡가 슈만이 이 세 음을 주제로 만들어 제자인 디트리히와 브람스에게 한 악장씩을 맡겼습니다. 그 결과 1악장은 디트리히가, 3악장은 브람스가, 2·4악장은 슈만이 쓴 특이한 바이올린 소나타가 완성됐습니다.

베르디 레퀴엠은 국내에서도 자주 연주됩니다. 7월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도 한국오라토리오싱어즈(지휘 최병철)가 이 곡과 최병철 곡 ‘성 김대건 안드레아 대사제 찬가’ 등을 연주합니다. 한편 오늘 28일은 ‘F-A-E 소나타’의 모티브를 제공한 요아힘의 185번째 생일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베르디#베르디의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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