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환경정책 10년… 4조 쏟아붓고도 여전히 “숨막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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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미세먼지와의 전쟁: 한국의 현주소]

“이대로는 월드컵을 치를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축구팬과 관광객이 몰려와 뭐라고 하겠습니까. 더러운 공기 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1999년 겨울, 경기 과천시의 환경부 회의실. 당시 이슈로 떠오른 배기가스 저감 관련 정책을 놓고 당국자들이 이같이 문제를 제기했다. 경유버스의 시커먼 배기가스 때문에 “하얀 와이셔츠의 칼라나 소매 끝이 하루 만에 더러워진다”며 직장인들이 고개를 내젓던 때였다. 해외에서 파견되는 주재관이나 외교관들이 서울 근무를 꺼리는 이유로 꼽힐 정도로 스모그 문제는 심각했다.

환경부는 압축천연가스(CNG) 버스로 교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버스 생산업체를 비롯한 산업계의 반발로 난관에 부닥쳤다. 당시 김명자 환경부 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국민의 정부에서 시행한 환경 정책의 성공 사례가 될 것”이라고 설득해 동의를 받아냈다. 월드컵이 열리는 10개 도시의 경유버스 3만7000여 대를 천연가스 버스로 바꾸는 거대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는 순간이었다.



되감기는 시곗바늘, 거꾸로 간 정책


CNG 버스 교체는 대기 질 개선과 관련한 환경부의 대표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당시 정부는 CNG 버스를 도입하기 위해 1년 안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선정된 70가지 항목 대부분을 달성했다. 폭발 위험성이 있는 천연가스의 안전 기준과 충전소 건설 문제, 엔진 등 기술개발 등을 놓고 벌어진 부처 간 이견도 조율해냈다. 그렇게 탄생한 CNG 버스의 배기구에 흰 수건을 갖다대면서 “이렇게 검댕이 하나도 없다”고 강조하는 정부의 시연 장면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손뼉을 쳤다.

그런데 왜 최근 미세먼지 불안감이 급속히 커졌을까. 우선 미세먼지를 많이 내뿜는 경유차량(폴크스바겐)의 연비조작 사태로 인해 지난해 말부터 대기오염 불안감이 높아진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흔히 미세먼지는 중국에서 유입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연비조작 사태 이후 경유차량도 큰 문제라는 점이 부각됐다.

또 올해 황사가 예년과 달리 3월부터 5월까지 길게 이어진 것도 문제였다. 미세먼지와 황사를 구분하기 어려운 국민들의 걱정이 커졌다. 올해 환경부와 기상청이 각각 담당하는 미세먼지와 황사 예보가 수차례 엇나가면서 국민 불신도 키웠다. 이 와중에 올해 4월과 5월은 미세먼지(PM10)가 ‘좋음’(30μg 이하) 기준을 충족한 날이 각각 4일, 3일에 그쳤다. 미세먼지 예보의 기초 자료가 되는 측정소들이 자동차와 사람의 왕래가 드문 곳에 있어 미세먼지의 실태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서울 전역에는 39곳의 미세먼지 관측소가 있는데 이 중 64%(25곳)가 숲 한가운데나 인적이 아예 없는 옥상, 차량이 없는 공원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의 경우 대기 질 개선에 투입된 예산이 10년간 약 4조 원에 달하지만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2012년 이후 개선되지 않았다. 올해 4월 23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미세먼지 경보가 대구에 내려졌다. 이날 미세먼지는 가장 오염된 중국 베이징과 맞먹는 수준이다.

고등어를 구울 때 나오는 미세먼지가 대기 중 미세먼지 ‘주의보’ 기준의 25배에 달한다는 환경부의 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 서민 생선인 고등어를 둘러싼 논란이 커졌고, 미세먼지를 줄여준다는 각종 요리기구와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2012년 인천 송도에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유치하고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를 설립하며 ‘녹색성장’을 외치던 ‘친환경 한국’으로서는 체면을 구겼다. ‘녹색성장’이 대기환경이 아닌, 이산화탄소(CO₂) 배출 감소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녹색(청정)과 회색(오염) 이미지의 부조화 간극은 색깔만큼이나 선명하다.

‘클린 디젤’과 값싼 원료에 눈먼 정부

환경 전문가들은 미세먼지 정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이른바 ‘클린 디젤’이라는 잘못된 신화를 지목하고 있다. 2005년 경유 승용차를 허용한 이후 점진적으로 늘어오던 경유차는 BMW와 폴크스바겐, 아우디 같은 프리미엄급 유럽산 수입차들이 들어오면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클린 디젤’이라는 이미지를 퍼뜨리는 자동차 업계에 장단을 맞추듯 정부는 유로5 기준 이상의 경유 승용차를 ‘저공해 차량’으로 분류했다. 2009년 친환경 차량 수준으로 이미지가 업그레이드된 경유차는 환경개선부담금 면제, 공영주차장 50% 할인 등의 혜택까지 누렸다. 원료 다변화를 이유로 경유택시 지원 정책까지 등장했다.

무엇보다 경유값이 쌌다. 2005년까지만 해도 휘발유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후 에너지 세제 조정을 통해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비율이 100 대 85까지 좁혀졌지만 경유에 붙는 세금(L당 0.62달러)은 여전히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50∼60% 정도다. “경유차 상당수가 생계형 트럭과 산업용 화물차임을 감안한 정책적 결정”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지만 그 혜택은 고가의 수입 경유차 운전자에게도 돌아갔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3일 “온실가스 감축과 연비 때문에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이야기가 됐던 것인데 ‘중대한 시행착오’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며 “클린 디젤이라는 입법 취지와 달랐던 점은 정부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디젤 차량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에 대해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경유차의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는 암이나 폐질환을 유발하는 등 ‘위해성 기여도’가 84%나 됩니다. 단순히 전체 미세먼지의 몇 %를 차지하느냐 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죠. 그런데도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유차를 저공해 차량으로 분류해준 정부의 정책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던 겁니다.”(수원대 환경공학과 장영기 교수)

국내 에너지원의 상당 부분을 발전단가가 싼 석탄화력발전소에 의존해온 것도 미세먼지 증가에 한몫했다. 석탄 단가는 kWh당 34원. 정부는 전력대란 이후 잇단 증설을 허용했다. 유엔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에 역행한다는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029년까지 20기의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국외 요인으로는 단연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이 제일 크다. 추위가 몰려오면서 중국의 난방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늦가을부터 한반도 상공의 농도가 치솟는다. 이 시기 중국발 미세먼지는 전체 비중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다만, 이런 해외 요인은 마땅히 손쓸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외교부 당국자는 “폐렴 환자한테 가서 ‘너 때문에 감기 걸렸으니 책임지라’는 식이 될 수 있어 우리로서도 정색하고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나노(nano)화’되는 미세먼지의 재앙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정부의 대응은 국내의 미세먼지 발생 요인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몰려오는 특정 시기를 제외하면 국내 요인이 30∼40%에 이르는 만큼 이것부터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핵심 타깃은 경유 자동차다. 인구 1000만 명이 밀집한 서울과 수도권의 대기오염 주범이 자동차 배기가스, 그중에서도 미세먼지의 60∼70%를 차지하는 경유차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날 선 지시에서 시작된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 마련 작업은 3일 범정부 특별대책으로 발표됐지만 실효성은 없는 재탕 삼탕 정책으로 변죽만 울렸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경유값 인상안은 부처 간 갈등에 정치권까지 반대하고 나서면서 결국 2018년에 검토하는 걸로 흐지부지 봉합됐다.

김명자 전 장관은 “정부가 경유차 진흥 정책을 쏟아내던 때가 불과 5, 6년 전인데 갑자기 규제하겠다고 하니 정책의 신뢰도에서부터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정확한 원인 진단을 바탕으로 중장기 대책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비용을 물리는 방식과 대상을 놓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측정망을 비롯한 기술적 인프라가 떨어지다 보니 정확한 배출원 분류와 배출량 측정, 그 비중에 대한 판단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핵심인 ‘비용 부담’을 누가, 얼마나 더 많이 질 것이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한목소리로 “지금 손쓰지 않으면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넘어 극(極)미세먼지로까지 작아지고 있다는 것. 실제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 크기는 PM10(입자 지름이 10μm 이하)에서 PM2.5까지 작아진 데 이어 이제는 1μm 이하인 PM1까지 줄어드는 추세다.

연세대 예방의학교실 신동천 교수는 “엔진과 배출 관련 기술이 좋아지면서 역설적으로 건강에 더 문제가 되는 먼지의 ‘나노(nano)화’ 문제에 부닥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류가 이제 과거 진화 과정에서 겪어보지 못한 먼지를 처음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셈”이라며 “대응이 더 힘들어지고 필요한 비용과 시간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은 lightee@donga.com·임현석 기자
#미세먼지#환경부#경유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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