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눈]창조경제 질주, 규제프리존 새 고속도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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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우리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 완공이 1970년, 꼭 46년 전의 일이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규모였던 429억 원의 예산과 연인원 900만 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그 과실은 달콤했다. 완공 전 15시간이나 걸리던 서울∼부산을 5시간으로 단축해 물류 경쟁력을 높여 수출형 산업 육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영감을 불어넣은 것이 독일의 아우토반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자동차가 달리는 길’이라는 뜻의 아우토반은 말 그대로 독일 자동차 산업의 젖줄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아우토반의 약 40%는 속도무제한 구간이다. 진입로의 속도만 시속 50km로 제한하는 최소한의 규제는 아우토반을 유럽 내 최고의 도로망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올해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구조개혁 평가보고서는 한국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네트워크 산업, 전문서비스, 소매유통 부문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규제 완화를 통한 경쟁과 혁신 촉진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에 맞닿아 있다는 충고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시의 적절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법안의 골자는 전국 14개 시도를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등 지역전략산업 거점으로 지정해 집중적으로 키워 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화산업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특례 조항들을 메뉴판처럼 골라서 적용한다는 이야기다. 기존 규제를 선택적으로 적용받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니, 법안이 잘 실행된다면 낡은 규제가 신기술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규제프리존이 취지를 잘 살려 나가기 위해 두 가지 바람을 덧붙이고 싶다. 먼저 법안의 기본 방향인 네거티브 규제 철학이 훼손되지 않고 추진됐으면 한다. 네거티브 규제란 ‘하지 말아야 할 일’만을 제시하고 허용 가능한 최대한의 자유와 창의를 보장한다는 개념이다. 가령 드론이 날아다닐 수 있는 공간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만 제외하면 모두 된다’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둘째, 규제 완화는 해당 지역이 혁신 클러스터로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경영학의 세계적 거장인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혁신 클러스터의 성공을 위해서는 연구소, 대학, 기업 지원 기관, 금융기관 등 다양한 주체들 간의 상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세제 혜택이나 개발사업, 건축허가 간소화 등 경제부문의 규제 완화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본래의 목표를 잃고 또 하나의 지역산업 육성 정책에 그칠지 모른다. 다행히 법안의 세부 내용에 연구소기업의 설립 요건 완화, 공동연구개발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하니 실행방안이 잘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 변화가 심상치 않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확대되고 있고 기술혁신은 서비스업, 제조업뿐만 아니라 농업과 같은 전통산업의 경계마저 무너뜨리는 모양새다. 사물인터넷, 융합제조업 등 복합 산업이 등장하기 무섭게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이 선점하려는 태세다.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 국가 성장 전략으로 창조경제라는 엔진이 장착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규제프리존이라는 새로운 고속도로에서 국가의 창조엔진이 중단 없이 질주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이상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창조경제#규제프리존#이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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