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SNS시대… ‘남의 눈속 티끌’만 보려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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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우리네 사회가 그런 식으로 인간을 처치하도록 조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셨나요?―전락(알베르 카뮈·책세상·2010년) 》
 

초등학교 때 붕어 10마리를 잡아다 좁은 어항에 기른 적이 있다. 다들 잘 자랐는데 유독 한 놈만 비실거렸다. 자세히 보니 다른 고기들이 밤마다 비늘을 입으로 쪼았다. 처음 잡혔을 땐 비늘 한두 개가 빠져 있었지만 며칠 지나니 속살이 온통 드러났다. 녀석은 1주일 뒤 수면에 둥둥 뜬 채로 건져졌다.

알베르 카뮈의 1인칭 시점 소설 ‘전락’의 주인공인 클라망스는 사람이 이웃을 괴롭히는 방식이 이와 비슷하다고 봤다. 타인의 지적·도덕적 흠결이 발견되면 그것을 부풀려 사회에서 영영 내쫓는다는 것이다. “자기가 심판받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남을 심판하려 덤비는 것”이 그가 찾은 인류의 본성이다.

전직 변호사인 클라망스는 이런 본성이 잘 발달된 사람이었다. 남의 잘못을 드러내는 걸 아예 취미로 삼았다. 그는 안개가 내려앉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술집에서 생면부지의 먹잇감이 옆에 앉기만을 기다렸다.

클라망스의 대화는 늘 자기 과오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권태에 못 이겨 걸인을 괴롭히거나 미술품을 훔쳤다는 식의 일화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죄를 실토하게 유도하기 위한 미끼였다. 고해성사의 주어는 슬그머니 ‘나’에서 ‘우리’로 바뀌고, 상대방은 죄악의 공범으로 포섭된다. 어느덧 상대는 앞서보다 더 큰 잘못을 고백하면서 그의 동정을 구한다. ‘참회자’에서 ‘재판관’으로 바뀐 클라망스는 “하느님 아버지가 된 듯한 도취감”을 누리게 된다.

카뮈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잘나가던 연예인도 TV쇼에서 내뱉은 말실수 한 번으로 ‘인성 논란’에 휘말리다 추락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정죄(定罪)는 온 사회를 불행한 어항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말 한 번 잘못해 파렴치한으로 전락하는 세상에선 누구든 자기 차례를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 카뮈는 클라망스식(式) 처세술이 가져올 결론은 ‘고통’이라고 경고했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
#카뮈#sns#책#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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