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받았으니, 갚아야죠” “친구따라 갔다가 되레 힐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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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자원봉사: “우린 이래서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해 고무보트를 타고 떠내려온 아이들을 구한 사람들. 사무실에서 나와 헝가리로 향하는 난민에게 물병을 건넨 직장인들.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총격을 피해 도망치던 거리의 사람들에게 기꺼이 문을 열어준 파리 시민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모든 ‘이름 모를 봉사자’를 ‘2015년의 인물’로 꼽았다. 가디언은 “대형 사건 사고가 많았던 2015년은 특히 자원봉사자가 더 필요했던 한 해였다”며 “아무런 대가 없이 시간과 노력, 친절을 베푼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위기의 순간엔 늘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2014년 전남 진도 팽목항과 경기 안산이 그랬다. 또 2007년 12월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사고로 충남 태안 앞바다가 기름으로 뒤덮였을 때도 자원봉사자가 줄을 이었다. 사고 77일 만에 태안을 찾은 봉사자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사고 일주일 만에 오염된 해안의 79%가 응급 방제되자 사람들은 ‘태안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봉사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상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직접 들어봤다.

봉사를 받다가, 이제 봉사를 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머리를 다듬고 있는 가양7단지아파트봉사단의 안상순 씨(오른쪽).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머리를 다듬고 있는 가양7단지아파트봉사단의 안상순 씨(오른쪽).
13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안상순 씨(52·여)는 이른바 ‘생활 봉사인’이다. 지금은 서울 강서구 가양7단지아파트봉사단에서 거동이 어려운 이웃에게 수시로 이미용 서비스를 한다. 또 단지 내 홀몸어르신에게 복지관에서 준비한 밑반찬을 배달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말동무가 되기도 한다. 한 달에 1차례 강서성모요양병원을 찾아가 어르신 50여 명의 머리를 다듬어 드린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에는 가족 모두가 늘푸른나무복지관의 사랑나눔봉사단과 함께 장애인을 위한 외식 지원 행사를 돕는다.

안 씨가 처음 봉사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2004년. 지체장애가 있는 딸을 데리고 집 근처 늘푸른나무복지관을 찾게 되면서부터다. 그때만 해도 그는 봉사를 ‘받는’ 쪽이었다. 어느 날 그곳에서 시각장애인 봉사자가 참가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봤다. ‘나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안 씨는 ‘봉사자’가 됐다.

거동이 어려운 딸을 보살펴야 했기에 직장생활이 어려웠다. 그 대신 딸을 데리고 다닐 수 있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풍선아트도 배우고, 보육교사 과정, 한식조리 과정도 수료했다. 자원봉사를 스스로 기획하면서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돼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자원봉사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안 씨는 “일부러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생활일 뿐”이라고 했다. 안 씨는 “예전에 시골에 살았을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면 마당도 쓸고 집 주변도 쓸고, 텃밭도 함께 가꾸고 했는데 요즘은 이 모든 일이 오히려 ‘봉사활동’이 됐다”는 것이다.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을 적엔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음식을 차릴 때 누군가 오면 숟가락 하나 더 얹어주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안 씨는 “요즘은 활동보조사나 요양보호사가 돈을 받고 그 역할을 대신 한다”며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문에 자발적으로 주변에 관심을 갖고 나서는 봉사자가 줄어들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한 것

서울대 청원경찰 송하균 씨(왼쪽)가 그의 보살핌 봉사를 받는 홀몸노인 박주성 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대 청원경찰 송하균 씨(왼쪽)가 그의 보살핌 봉사를 받는 홀몸노인 박주성 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식보다 나아. 그냥 내 아들이야.”

6·25전쟁 참전용사로 무공훈장을 받은 박주성 옹(88)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꼬박꼬박 안부전화를 걸고, 시간 날 때마다 과일을 싸들고 찾아오는 송하균 씨(49)가 고맙기 그지없다. 서울대에서 캠퍼스 청원경찰로 일하는 송 씨는 햇수로 24년째, 시간으로 따지면 4700시간에 이르는 자원봉사활동을 해온 ‘봉사왕’이다. 일주일에 한 번, 야간근무를 선 다음 날 주어지는 휴일이 그에게는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시간이다.

유도를 전공한 송 씨는 1992년 서울남부교도소 교도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2교대로 근무하던 교도관의 처우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지쳐가던 어느 날 짐승 같아 보였던 수감자들의 모습이 그의 시선에 조금 다르게 들어왔다. “나보다 훨씬 불쌍한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때부터 송 씨는 열혈 자원봉사자가 됐다. 노인복지센터 급식 봉사를 시작으로, 박 옹 같은 홀몸노인 보살핌, 서울소년원 멘토, 관광객을 상대로 한 우리궁궐길라잡이, 동네 의용소방대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말기 암 환자의 목욕 도우미 같은 강도 높은 활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동을 거의 할 수 없는 간암 환자의 목욕 도우미를 한 적이 있는데, 일주일 후에 가보니 돌아가신 겁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까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을 더 소중히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봉사활동을 통해 익힌 실력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직접 목욕을 시켜 드렸다.

송 씨는 봉사활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도 도왔다고 믿는다. 그는 “처음에는 불우한 남을 돕고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오히려 내 삶이 윤택해지더라”라며 “봉사활동을 하면서 술 담배 끊고, 인생을 더 알차게 살 계획을 세웠고 아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됐다”고 말했다.

친구 따라 갔는데 ‘힐링’ 되네요

‘노을공원 시민모임’ 부스에 찾아온 어르신들에게 노을공원의 생태환경을 설명하고 있는 진우영 양(오른쪽).
‘노을공원 시민모임’ 부스에 찾아온 어르신들에게 노을공원의 생태환경을 설명하고 있는 진우영 양(오른쪽).
지난해 1월부터 ‘노을공원 시민모임’ 활동을 주말마다 하고 있는 진우영 양(18)은 ‘친구 따라’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한 일은 추운 겨울 서울 마포구 노을공원에 있는 나무들이 얼어 죽지 않도록 ‘낙엽 이불’을 덮어주는 것. 이후 텃밭 만들기, 쓰레기 줍기, 씨앗 키우기, 나무 심기 등 계절마다 노을공원을 보호하는 활동을 했고, 고교 3학년인 지금도 시험기간을 제외한 주말마다 참여하고 있다.

노을공원 시민모임은 2011년 봄에 시작해 같은 해 12월 서울시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됐다. ‘쓰레기섬’이었던 난지도가 월드컵공원으로 바뀌면서 이곳에 골프장이 생기자 환경 파괴를 우려한 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이때부터 노을공원 시민모임은 노을공원에 나무를 심고, 외래종을 솎아내고, 노을공원의 생태환경을 연구한다.

진 양은 이 모임에서 강연을 듣고, 총회에도 참석하면서 자연스레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진 양은 “다음 달 공원에 사는 생물종을 찾아 목록으로 만드는 ‘바이오블리츠’ 대회를 열 정도로 노을공원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다”며 “저는 원래 쓰레기도 함부로 버리고 물도 막 쓰는, 생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봉사를 하면서 우리가 환경을 가꾸고 보살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희망 전공까지 환경공학으로 정했다.

봉사활동의 원동력은 ‘힐링’이다. 그는 “탁 트인 노을공원에 가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린다. 가끔 친구들도 데려가는데 처음 가는 애들도 ‘힐링이 된다’고 좋아한다”며 “모임을 함께 하는 분들이 모두 가족처럼 대해준다”고 말했다.

호기심에서 시작했는데 책임감 생겨


송동일 씨(23)가 올해 초 ‘서울 동행 프로젝트’ 발대식에서 자신의 경험을 다른 봉사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송동일 씨(23)가 올해 초 ‘서울 동행 프로젝트’ 발대식에서 자신의 경험을 다른 봉사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중학생들 봉사활동이란 게, 헌혈 한 번 하고 4시간 받는 식이거든요.”

송동일 씨(23)는 ‘진짜 봉사활동이 뭘까’ 하는 호기심에서 봉사를 시작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초중고교생에게 재능기부로 교과목 학습 지도를 하는 서울 동행(동생행복) 프로젝트에 2학기째 참여하고 있다. 매주 하루 중학교로 찾아가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의 공부를 돕는다.

그는 “나중에 취업하고 직장인이 되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내가 누군가를 돕는다면 가장 효과적인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교육봉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는 송 씨에게 봉사활동이 사실 꼭 필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송 씨는 “중학생인데 아직 알파벳도 익히지 못한 친구가 있어 처음엔 속으로 놀랐다”며 “지금은 그 친구가 나를 많이 좋아하고 따라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시험기간처럼 바쁠 때는 귀찮기도 하지만 한 번 시작한 책임감으로 계속 봉사를 해오고 있다고 했다. 봉사도 좋지만 사교육 문제는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지 물어봤다. “문제가 해결되려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또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그 전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김민 kimmin@donga.com·황태호 기자
#자원봉사#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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