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장원재]日 자위대 기지에서 느낀 역사의 무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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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특파원
장원재 도쿄특파원
한국의 3·1절인 1일 일본 가고시마(鹿兒島)의 가노야(鹿屋) 해상자위대 항공기지를 방문했을 때였다. 기지 현황을 설명하던 자위대 간부는 마지막에 사료관 얘기를 꺼냈다.

“대원들의 정신교육을 위해 1993년 문을 열어 구(舊) 해군 특별공격대의 유품, 관계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배우고, 현재를 알고,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 만들었고 지금까지 170만 명 이상이 관람했습니다.”

구 해군 특별공격대는 태평양전쟁 말기 자살 공격을 위해 출격했던 ‘가미카제 특공대’를 말한다. 설명 후 나눠준 가방에는 자료와 함께 기지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가 들어 있었다. 귀여운 남성 해군 캐릭터는 ‘소라(하늘) 군’, 여군 캐릭터는 ‘우미(바다) 짱’이라고 했다. 이들의 얼굴은 노란색 꽃잎으로 둘러져 있었다. 부대 관계자는 “꽃잎은 (가미카제) 특공대를 상징한다”고 했다.

본토 최남단에 위치한 가노야 기지는 태평양과 동중국해를 동시에 접하고 있다.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전시 가장 많은 908명이 이 기지에서 제로센(제2차 세계대전에서 주력으로 쓰인 일본의 함상전투기)을 타고 가미카제 공격을 위해 출격했다. 만든 지 80년가량 됐다는 활주로 위로 97년 전 독립을 외쳤던 식민지 선조들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듯했다.

가미카제 특공대에서 ‘과거를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료관을 둘러보면서 답을 찾고 싶었지만 외신기자들을 위한 이날 프로그램에는 사료관 관람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돌아와 찾아본 사료관 홈페이지에는 가미카제 전시물에 대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대원의 지고지순한 마음을 기리고, 이해하기 쉽게 전시돼 있다”고 나왔다. 제로센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명기(名機)’라고 했다. ‘전쟁은 나쁠지 모르지만 제로센은 멋있고, 국가를 위한 가미카제 대원의 희생은 고귀하다’는 식의 선전이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사료관을 찾는 이들이 최근 2배 이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지난해가 전후 70주년이었던 데다 최근 가미카제와 제로센을 다룬 ‘영원의 제로’라는 소설과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설명이다. 올해 1월 말에는 복원된 제로센이 이 기지에서 시험비행을 하는 이벤트도 열렸다.

하지만 모든 제로센 조종사가 정말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는 마음으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돌격한 것은 아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조종사들이 가장 많이 언급했던 말은 ‘어머니’라고 한다. 날씨가 흐려 돌아왔다가 ‘생명이 아까워서 그러냐’며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맞았다는 증언, 전쟁이 끝난 뒤 판세가 결정된 상황에서 소모품처럼 이용된 것을 알고 분노했다는 증언도 있다.

문제는 실상을 증언해줄 전쟁 경험자들이 대부분 고령이고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필두로 한 보수 우익 진영을 중심으로 과거사를 미화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역사의 실상을 전해야 할 교과서를 왜곡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집단적 기억 왜곡을 시도하는 셈이다.

올해 문부과학성 검정 과정에서도 고교 저학년용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이 왜곡되고, 간토(關東) 대지진과 난징(南京) 대학살 희생자 수에 관한 내용이 바뀌었다. 왜곡된 교과서로 배운 일본 학생들은 앞으로 어떤 일본을 만들어 나갈까. 머지않은 어느 날 ‘가미카제의 기억’이 ‘가미카제의 추억’으로 둔갑할지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장원재 도쿄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자위대기지#일본#가미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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