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86 껍데기’는 가고 ‘97그룹 40대’ 나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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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수석논설위원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1970년 9월 29일 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명승부였다. ‘40대 기수론’을 내건 거산(巨山·김영삼)과 후광(後廣·김대중)이 맞붙었다. 얼마 전 타계한 소석(素石·이철승)도 뛰어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1차 투표의 1위 YS는 과반 득표에 실패한다. 결선에서 DJ는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다. DJ는 박정희와 붙어 94만 표 차로 졌다.

당시 40대 기수론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한 지도자를 요청한 시대정신이었다. YS의 선창에 DJ와 소석이 가세하자 야당의 노쇠한 리더십이 흔들렸다. 40대 기수론은 정계에 들불처럼 번졌다. YS 42세, DJ 44세, 이철승 47세. 5·16 군사정변으로 등장한 집권세력은 이듬해 대선에서 겨룰 야당의 연로한 후보군보다 평균 연령이 훨씬 젊었다.

야당의 지도자인 해공(海公·신익희)이나 유석(維石·조병옥)이 자유당 독재정권 때 후보로 나섰다 대선 직전 급사해 정권교체는 수포로 돌아갔다. 1969년 3선 개헌 반대 투쟁 때도 연로한 유진오 신민당 총재의 신병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의 케네디와 닉슨 대통령, 영국 윌슨과 서독 브란트 총리도 젊은 지도자였다. 군사독재와 맞서야 할 한국 역시 젊은 리더십이 절실했다.

DJ YS 소석의 순서로 46년 전의 기수(旗手)들이 영면에 들어갔다. 2016년 총선에선 40대 리더십이 나올 낌새조차 없다. 1년 9개월 뒤 대선에서도 여야 어디에도 40대 유력 주자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거꾸로 70대 노장(老將) 두 명이 눈앞에 자꾸 어른거린다. 여당의 반기문(72)과 야당의 김종인(76)이 대선 후보로 자웅을 겨룰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 모두 나이는 많지만 불꽃 레이스를 펼칠 건강과 경력, 집요함, 지모까지 갖췄다.

김종인은 60여 년 전부터 할아버지(佳人 김병로) 무릎에서 산 정치를 배운 ‘정치 9단’이다. 반면 반기문은 직업 외교관을 했을 뿐 정치 수업을 받은 바 없다. 그에게 반기문에 대해 물어봤다. “그 사람 선거 해봤나요?” ‘온실 속의 화초(반기문)’ 얘기를 왜 꺼내느냐는 투다. 진흙탕 예선과 본선을 거쳐야 할 국내 대선과 신사적인 유엔 사무총장 선거는 천양지차(天壤之差)라는 말이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이다’ 하는 독보적 존재가 지금 여야엔 안 보인다. 여는 김무성 오세훈 유승민 김문수 나경원 원희룡…, 야는 문재인 안철수 김부겸 박원순 안희정 김두관…. 모두 뭔가 2% 부족하다. 이들 중에 40대는 없다. 그러니 마른하늘 벼락 치듯 40대 리더십이 튀어나올 리 절대 없다.

김종인의 친노 및 86그룹 쳐내기는 60점쯤 될까. 말폭탄 정청래와 전대협 의장 출신 오영식 등을 넣어 체면치레는 했다. 86그룹이 ‘똥차’처럼 앞을 막아 40대 리더십이 들어설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 그러나 YS DJ처럼 몸을 던져 변화를 만들어낼 결기를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시작하고, 천하의 큰일은 미세한 데서 일어난다”고 설파했다. 40대여, 86그룹 똥차들을 밀어내고 역사의 전면에 나서라. ‘평범함으로 비범함을 이기는’ 오묘한 이치부터 일상 생활에서 실천궁행(實踐躬行)하라.

고(故) 신동엽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다. 껍데기 쭉정이 86그룹을 내치고 97그룹이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무장해 4월 총선에 나서라. 씻나락 같은 존재가 돼 나라를 바로 세우라.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
#40대 기수론#김종인#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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