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성장동력 키우려면 ‘성실 실패’ 기준 명확히 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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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일 서울대 부총장·공대 교수
이우일 서울대 부총장·공대 교수
우리나라는 지난해 연구개발(R&D)에 정부예산 18조900억 원을 투자했으며, 올해 예산도 작년과 비슷한 규모다. 최근 10년간 정부 R&D 예산은 연평균 8%씩 꾸준히 증가해왔는데 이는 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돈다. 이렇게 투자하는 것은 R&D만이 우리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는 국민의 암묵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R&D 목적을 위해서는 특히 미래 성장동력 발굴, 창조 경제에 대한 투자에 우선 배분해야 할 것이다.

창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전정신이다. 실패를 겁내서는 창조가 어렵다. 인도 대통령을 지낸 유명 과학자인 압둘 칼람은 실패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FAIL이 “First Attempt In Learning”이라고 말했다. 즉 실패는 배우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해본 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를 용인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실패는 치욕일 뿐, 경험이 되는 시행착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는 정부의 R&D 관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부 R&D 관리에서도 실패를 용인하며 ‘성실 실패’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고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 왔다. 성실 실패란 연구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였더라도 성실히 노력한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를 말한다. 미래창조과학부도 이러한 취지에서 ‘연구관리 표준매뉴얼’을 만들어 성실 실패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매뉴얼은 법령이 아닌 가이드일 뿐 구속력이 없다.

정부는 소관 부처마다 모두 17개나 되는 연구비 관리기관들을 두고 있는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경우에 대한 대응이 서로 다르다. 연구과정을 고려하는 곳도 있지만 성과 평가를 단순히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가르는 경우도 아직 많다. 성실히 노력했는데도 너무 도전적 목표를 잡아 실패한 경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점만 부각하여 실패로 간주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이다.

성실 실패의 기준도 제각각 다르다. 이러니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성공할 만한 과제에만 도전하게 되고, 연구개발 결과가 대부분 ‘성공’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정작 투자 효율성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연구비 집행이 투명해야 하고 일탈이 있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처분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성실 실패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이 연구 결과만을 갖고 과도한 제재를 고집한다면 연구자들은 홈런을 노리는 연구를 할 수 없게 된다. 타율을 높이는 데 급급해 번트만 대려 할 것이고 연구개발 체질 전환은 더욱 어려위질 것이다.

이우일 서울대 부총장·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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