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뷰스]금융상품에 ‘공짜점심’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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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국 ING생명보험 대표이사
정문국 ING생명보험 대표이사
“대출로 집을 5채 샀어요. 돈을 빌려 주기 전에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죠.”

영화 ‘빅쇼트’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은 이 말을 듣고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큰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확신한다. 최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이 영화를 봤다. 금융 종사자로서 생각해볼 점이 무척 많아 영화 내용을 여러 번 곱씹었다. 영화는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힌 금융회사와 감독당국, 언론, 소비자가 다가올 위험을 인지하지 못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제대로 된 안전장치가 없는 금융이라니…. 안전띠 없는 롤러코스터처럼 아찔하다.

다행히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험을 통해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 감독 강화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확산됐다. 국제보험감독자협의회(IAIS)는 G-SII(국제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보험회사)에 대한 기본 요구 자본 및 추가 요구 자본 기준서를 발표하는 등 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유럽에서도 같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금융당국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국제적 정합성을 갖춘 새로운 자본규제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는 등 보험회사의 ‘뒷문’을 탄탄히 하는 데 힘쓰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들은 보험부채의 시가 평가, 연결기준 지급여력 제도, 정교한 리스크 측정 등 구체적인 제도 시행에 대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가격과 상품의 자율화 바람도 거세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금융회사 영업행위 규제개혁안’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에는 금융 규제개혁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이를 상반기 내에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올해 초 한 토론회에서 “국민들의 편익을 높이는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고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제고하는 게 금융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응답으로 몇몇 보험사는 보험료 조정에 활발히 나서고 있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신상품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른바 보험사의 손발을 묶었던 사전 규제들을 없애고 나니 보험사들이 자율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규제 속에서 안주하고 있던 습성을 버리는 데는 당장 노력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결국에는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규제의 ‘앞문’이 열려 혁신적인 상품을 내고 활발하게 영업활동을 한다면 선택지가 다양해진 소비자의 반응은 뜨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회사의 수익성도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율과 경쟁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금융회사의 리스크는 곧 소비자의 리스크다. 특히 상품 계약기간이 긴 보험은 더 그렇다. 활짝 열린 ‘앞문’을 통해 들어온 소비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뒷문’, 즉 리스크를 고려해 철저하게 자본관리를 하는 것은 금융회사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금융회사는 소비자들에게 금전적인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하지만 그 이익을 지켜줄 수도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도 본인의 여건과 필요에 맞게 합리적인 상품 선택을 해야 한다. 단순히 보험료가 저렴하거나 지인이 권유하는 상품이어서 가입하는 시절은 지났다. 내게 꼭 필요한 상품이라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금융상품에 ‘공짜 점심’은 없다. 또한 상품 선택에 앞서 나의 자산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회사인지 반드시 살펴보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정문국 ING생명보험 대표이사
#금융상품#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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