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속 아이까지… 음주운전, 우리 가족의 삶 송두리째 파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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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1>음주단속 기준 0.03%로
행복 앗아간 살인흉기

《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순간 차량은 흉기로 변한다. ‘설마 걸리기야 하겠어’라는 안이한 생각은 자칫 끔찍한 사고로 이어진다. 현행 단속기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로는 음주운전의 유혹을 완전히 막기가 어렵다. 하지만 단속에 걸리지 않아도 누구나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술을 입에 대기만 해도 운전을 할 수 없도록 단속기준을 0.03%로 낮춰야 하는 이유다. 》

“큰딸 먹이려던 손만두가 아직 그대로 있는데….” 이경희 씨(52)는 8일 대전 유성구 자신의 집에서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꿩고기로 만들었다는 손만두를 꺼내 보였다. 부인 이옥선 씨(45)가 연신 “그만 좀 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부인 이 씨의 눈도 붉게 충혈돼 있었다. “만두 직접 만든 거야. 내 딸 주려고 내 손으로 내가 만든 거야. 이제 난 어쩌라고….” 울먹이던 아버지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27일 아버지가 만든 꿩고기 만두를 먹고 싶다고 말했던 큰딸은 사흘 뒤 세상을 떴다. 설날이었지만 집 안에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기자가 찾은 오후 7시경 서너 가지 반찬이 안주인 술상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 씨는 이미 취해 있었다. 큰딸(사고 당시 20세)을 음주운전 차량에 잃은 뒤 이렇게 매일 술로 지새운다.

음주운전 사고로 큰딸을 잃은 이경희 씨가 설날인 8일 대전 유성구의 자택을 찾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울먹이며 딸에게 주려고 손수 만든 만두를 보여주고 있다. 20세의 만삭이었던 큰딸은 지난해 12월 30일 음주운전 사고로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대전=정성택 기자 naivecst@empal.com
음주운전 사고로 큰딸을 잃은 이경희 씨가 설날인 8일 대전 유성구의 자택을 찾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울먹이며 딸에게 주려고 손수 만든 만두를 보여주고 있다. 20세의 만삭이었던 큰딸은 지난해 12월 30일 음주운전 사고로 배 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대전=정성택 기자 naivecst@empal.com
○ 두달 전 만삭 딸 잃은 이경희씨

이 씨는 사고가 난 날을 또렷이 기억했다. 지난해 12월 30일 큰딸 부부는 오전 2시가 넘어서까지 부모님 집에 있었다. 당시 큰딸은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출산예정일이 올 1월 25일이었다. 이날 이 씨는 둘째 출산을 앞두고 큰딸 부부를 격려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을 만나 아이까지 낳은 큰딸은 시댁에서 며느리로 인정받지 못해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다.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던 사위한테 이 씨는 “둘째까지 생겼으니 이제 맘 잡고 제대로 잘 살아보라”고 당부했다.

오전 2시 50분경 콜택시를 타고 큰딸 부부는 집으로 향했다. 오전 3시가 조금 지나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큰딸이 근처 대학병원에 있는데 위독하다는 것이었다. 사고는 집 바로 앞 삼거리에서 났다. 큰딸 부부를 태운 택시는 오전 2시 57분 신호위반을 하고 골목에서 삼거리로 나오던 티뷰론 차량에 들이받혔다. 티뷰론 운전자 이모 씨(27)의 음주 측정 결과 혈중알코올농도는 0.05%.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는 경계석이 10m 이상 튕겨 나갈 정도로 큰 사고였다. 이 사고로 사위도 중상을 입었고 현재까지 의식불명 상태다. 택시 운전사도 아직 치료를 받고 있다.

“아내는 집에 남겨두고 막내딸과 응급실로 달려갔지. 큰딸이 눈만 깜빡깜빡하고 있었어. 배 속에 있는 애는 이미 죽었다고 하더라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는 의사한테 물었지. 가망 있느냐고. 대답이 시원찮았어. 애 아프게 하지 말고 그만두라고 했어. 내가 큰딸의 눈을 손으로 감겨주고 의사가 천으로 얼굴을 덮었지. 그게 마지막이야.”

16일은 큰딸의 49재였다. 어머니 이 씨는 “휴대전화에 있는 큰딸 사진을 보면 지금이라도 전화가 와서 ‘엄마’ 하고 부를 것 같다”고 말했다. 축복 속에 시작한 부부생활은 아니었지만 큰딸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애교가 많아 명절 때면 어두운 집안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도맡아 했다. 만삭의 몸에도 꿋꿋하게 식당과 커피숍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첫째 아들 육아비와 생활비를 벌 만큼 생활력도 강했다.

아버지 이 씨는 “명절 때마다 같이 윷놀이를 하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며 “시집에서 받아주지 않는 세 살배기 손자는 어떻게든 내가 잘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음주운전만 안 했으면 이런 사고가 없었지. 술 한잔을 먹었어도 하면 안 돼. 음주운전은 살인행위야. 내 딸이 죽으라고 택시 탄 거 아니잖아….” 아버지는 끝내 고개를 떨궜다.

16일 경기 김포시 자택에서 만난 신현종 씨는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고 진통제를 찾았다. 신 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약을 타러 병원에 가는데 시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지원 차량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나 같은 사고 피해자를 위한 지원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포=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6일 경기 김포시 자택에서 만난 신현종 씨는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고 진통제를 찾았다. 신 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약을 타러 병원에 가는데 시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지원 차량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나 같은 사고 피해자를 위한 지원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포=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34년째 환상통 시달리는 신현종씨

왼쪽 다리를 잃은 지 34년이 지났다. 고통은 여전하다. 버스 운전사로 일하던 신현종 씨(64)는 사라진 다리 부분에 참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진통제를 복용하고 있다. 다리를 잃었지만 다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면서 고통까지 느끼는 것이다. 신 씨는 “사나흘에 한 번씩 통증이 심해진다. 이미 사라진 다리를 20cm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라며 “한 다리로 앉아서 펄쩍펄쩍 뛸 만큼 고통이 심하다”고 말했다.

증상은 겨울에 특히 심해진다. 병원에서는 약물중독을 우려해 진통제 복용을 늘리면 안 된다고 권유하지만 이미 약물 때문에 가끔 환각 증세를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병원에서 돌아올 때 붕 떠 있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신 씨는 1982년 4월 12일을 한시도 잊을 수 없다. 당시 김포시 자택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관광버스에 부딪혔다. 왼쪽 골반과 다리뼈가 모두 으스러져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버스 운전사는 대구에서 출발해 강화도를 들렀다가 내려오는 중이었다. 강화도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비가 오던 날이라 운전이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버스는 중앙선을 넘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신 씨에게 돌진했다. 신 씨는 버스와 나무 사이에 끼인 채 정신을 잃었다.

사고 당시 신 씨는 결혼한 지 1년이 채 안 된 신혼이었다. 당시 버스 운전사는 수입이 꽤 괜찮은 직종이었다. 하지만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과 함께 꾸린 단란한 가정은 사고로 풍비박산이 났다. 부인은 신 씨의 투병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 6개월쯤 지났을 때 어디론가 떠났다. 아이는 할머니와 고모들이 돌봤다. 1년 만에 병원에서 퇴원했지만 신 씨에게 남은 건 보험금 3000만 원이 전부였다. 신 씨는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혼자 자란 아들에게 가장 미안하다”며 말끝을 흐렸다.

불편한 몸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을 잡을 수도 없었다. 사고 후 중장비 대여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내 접어야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와 합의를 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조차 받지 않았어요. 그렇게 풀려난 가해자는 1년 정도 경비일을 하다가 다시 버스회사에 취직했습니다. 15년 전쯤 들은 소식으로는 운행 중 음주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해요. 음주운전은 결국 모든 삶을 파탄으로 몰고 갑니다.”
▼ 뺑소니 30%는 술 때문 ▼

사고 내고도 기억 못하거나 음주사실 들통날까 도망쳐


지난해 12월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에서 만취한 운전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 5명을 치고 달아났다. 이 사고로 10대 여성 한 명이 숨지고 4명이 크게 다쳤다. 달아난 운전자 권모 씨(26)는 사고 한 시간 뒤 집에서 검거됐다. 혈중알코올농도 0.146%로 면허취소 기준(0.1%)을 넘은 만취 상태였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사고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이처럼 뺑소니 사고 상당수는 음주운전에서 비롯된다. 2010년부터 5년 동안 발생한 뺑소니 사고 5만3081건 중 가해자가 음주 상태로 운전한 사례는 1만5741건(29.7%)에 이르렀다. 뺑소니 운전자 3명 중 1명은 술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사고를 냈거나 음주 사실을 들킬까 봐 두려워 도망친 것이다.

음주와 뺑소니 사고의 연관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4년 경찰대 정철우 경찰학과 교수가 운전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뺑소니 사고를 유발하는 운전자의 심리를 분석한 결과 ‘음주나 범죄 사실 등 불리한 정황을 감추려는 심리’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격자나 폐쇄회로(CC)TV 등 감시자가 없어서’라는 이유보다 상관관계가 더 높았다.

뺑소니 사고 피해자의 고통은 일반 사고보다 크다. 가해자가 검거되지 않으면 피해 보상을 받을 길도 막막하다. 2014년 발생한 뺑소니 사고는 8771건으로 207명이 숨지고 1만3622명이 다쳤다. 이 가운데 820건(9.3%)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뺑소니는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보다 사망할 확률도 10.7% 높다. 병원 이송이 늦어져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무면허, 무보험보다 음주 사실이 들통날까 봐 두려워 도망치는 경우가 3배나 많다”며 “뺑소니 사고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음주운전을 근절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전=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김포=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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