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이 말하는 2016 화두]<7·끝>싸워야 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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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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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
김용택 시인
어렸을 때 동네에서 형들이 싸운다고 집으로 달려가 “어메, 형들이 싸워” 하면 어머니는 늘 “냅둬라(내버려둬라), 싸워야 큰다”고 하셨다. 세상에 싸우지 않고 살아 있는 목숨은 없다. 싸우고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하루 이야기인 저녁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움에 열중하고 있는지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올해는 우리나라에 큰 싸움이 벌어지는 해다. 치고받고 해야 하는 진영의 꼴들을 점점 갖추어 가고 있고, 어느 정도 패가 갈라지고 조직이 완성되면 본격적인 격돌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4년에 한 번씩 또는 5년에 한 번씩 온 국민이 그동안 살면서 생각해 왔던 마음을 노골화시켜 대놓고 대판 싸움판을 벌인다.

세계의 나라들이 대개 우리나라처럼 정기적으로 해와 날을 정해 놓고 온 국민이 나서서 싸우는데, 왜 모두 비슷하게 그 기간이 4년인지는 모르겠다. 현대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4년이면 삶의 모든 모순이 다 드러나고 정리를 하고 새롭게 살아야 할 시간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4년이면 뭔가 틀림없이 고치고 바꾸고 다시 맞추어야 할 시간일 것이다. 어제와는 오늘이 다르니, 이제 갈아 치우자는 약속이 선거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은 싸움 구경이라고 한다. 치고받고 어디가 터지고 부러지고 죽고 사는 싸움을 구경할 때가 그렇지, 본인들이 직접 싸운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이 달라진다.

싸움에는 전략과 전술, 유무형의 기술이 필요하다. 전략과 전술이라는 게 말이 좋아 전략과 전술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자는 말과 다름없다. 싸워 이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속임수와 꾀와 중상과 모략과 꼼수를 다 동원해야 한다. 비겁함과 치사함과 졸렬함으로부터 정정당당하고 떳떳하고 의연한 싸움, 즉 인간답게 이기고 지는 승부의 본보기가 서부 영화에서 보면 두 명의 싸움꾼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열 발 떼고 총 쏘기다. 멋지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다. 열 발 떼고 획 돌아서서 총을 쏘아야 한다는 게 사람들과의 기나긴 약속인데 그 약속을 어기고 아홉 발을 떼고 총을 쏘아 이기는 놈이 있다. 비겁하고 치사한 놈이다.

자, 이제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이야기할 때다. 지난 4년 동안 어느 당이, 어떤 사람들이 그리고 또 무엇이 우리들의 삶을 이리 꼬이게 만들고 터덕거리게 했는지 우리들은 다 보고 겪어 왔다. 원칙적으로 하면, 나라가 잘되게 하려면, 우리들의 삶을 조금은 낫게 개선하려면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 말과 행동이 옳은 사람을 뽑아야 맞다. 너무 정직한 이야기여서 신물이 날 것 같은 말이지만 말이다.

어머니가 싸워야 큰다고 싸움을 말리지 않았던 것은, 애초에 잘못이 있었고 그 잘못을 놓고 싸우다 너나없이 잘잘못이 모두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 잘못을 고치고 바꾸어서 서로 맞추다 보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제발 올해의 싸움은 어른들답게 정직하고 정의롭고 당당했으면 좋겠다. 때만 되면 특정 지역으로 달려가 어떤 사람 앞세워 이상한 짓만 골라 하면서 치사하고 졸렬하고 저열하고 비겁한 싸움을 일삼는 인간들은 제외시켜야 한다.

우리가 뭘 모르는가. 다 알면서 우리는 또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자기들의 정면만 볼 것인가? 나는 절대적으로 정치인들이 잘못해서 우리의 하루가 이렇게 힘들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를 힘들게 할 사람을 우리 손으로 뽑아 놓고 우리들이 힘들다고 한다. 아이들이 이런 어른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헐!”

싸워서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조화롭게 만들어야 한다. 조화란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것이다. 내 편만 진실한 게 아니라 진실한 것이 진보다. 정직한 내 손이 정의로운 보수다. 우리가 지금처럼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않는가. 싸우자. 나와 너와 우리 모두 싸워 여기에서 한 발만 앞으로 더 진일보하자.

김용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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