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리어카 미담의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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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어카로 차을 글었습니다 전하기가 업어서 전하주새요(리어카로 차를 긁었습니다 전화기가 없어서 전화주세요).”

이달 초 페이스북에는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됐습니다. 측면이 길게 긁힌 검은색 차량에 흰 종이가 붙어 있었고 그 안에는 위와 같은 메모가 담겨 있었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체에 맞춤법도 엉망인 이 메모는 마치 글쓰기에 서툰 할아버지, 할머니가 쓴 듯한 인상을 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에는 모두가 예상하는 뭉클한 사연이 담겨 있었습니다. 굽은 허리를 이끈 채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동네 노인을 본 적이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잠시 스마트폰 화면에 시선을 둘 법한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글에 담긴 사연은 이랬습니다. 사진 속 검은 차량의 주인임을 자칭한 게시자는 자신의 차를 긁은 누군가가 남긴 메모라며 해당 사진을 소개했습니다. 차가 긁히는 피해를 봤건만 그는 도리어 불안에 떨고 있을 그 누군가를 걱정했습니다. “봐드리는 건 봐드리는 건데 (상대방이) 걱정하고 있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더 초조하고 복잡하다”며 천사 같은 마음씨를 선보였습니다.

뒤이어 15분 뒤 올렸다는 ‘글 수정본’에는 미처 앞글에서 담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겼습니다. 메모에 남긴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역시 한 할머니가 불안에 떨며 전화를 받았고 이에 “보험처리 하면 되니 안심하시라”며 할머니를 달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배상을 청구하기는커녕 우리 가게에 처치 곤란한 빈 박스, 깡통이 많으니 가져가 달라고 할머니에게 말했다며 다시 한 번 호기로운 모습을 보여 모두를 고개 숙이게 했습니다.

팍팍한 일상 속 모처럼 들려온 단비 같은 이야기에 누리꾼들은 찬사를 보냈습니다. 해당 글은 20만 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고 게시자의 글을 팔로하는 이들도 3000여 명이나 늘었습니다. 일명 리어카 미담이라는 이름을 달고 급속도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한 모바일 메신저 단체창의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뒤바뀌었습니다. 리어카 미담의 주인공과 같은 이름, 프로필 사진을 쓴 한 사용자는 메신저 단체방에서 믿지 못할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자신이 연관된 모 가게를 홍보하기 위해 해당 글을 올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할머니 섭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화 상대방의 메시지는 애초 이 사연이 실체가 없는 조작된 이야기임을 가늠하게 했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요. 조작이다, 아니다, 누리꾼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해당 사용자가 전에도 사실관계를 조작한 적이 있었다는 제보가 쏟아졌습니다. 애초 ‘사실과 다르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도 결국 자신의 계정을 폐쇄하는 등 백기투항해야 했습니다. 사실관계를 규명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누리꾼 모두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봐야 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거짓 미담에 감동한 내 마음을 물어 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바이럴마케팅(입소문 전략)의 공허함은 이미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 한발 더 나아가 미담까지 조작해가며 이익을 취하려는 이들을 볼 때마다 SNS 공간의 의미를 되묻게 됩니다. 업체 광고 등을 목적으로 ‘좋아요’가 수만 개 달린 페이지까지 공공연히 팔고 사는 현실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소셜 네트워킹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네트워킹인 걸까요.

최근 인터넷 개인방송 형태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SNS상에서 크게 화제가 된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씨가 문득 떠오릅니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이젠 어른이 됐으니 잘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모두를 달랬지만 현재가 마냥 장밋빛인 건 아닙니다. SNS 공간에 양심을 내다파는 그들도 어릴 적 김 씨를 따라 종이접기를 했을까요.

모처럼 선량한 마음을 가진 누리꾼들을 저버린 그들에게 왠지 날 선 댓글 대신 색종이 두 장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또 다른 거짓 미담으로 모두를 등지게 할 바에야 방에 홀로 앉아 나쁜 도깨비 인형이라도 접는 편이 차라리 나을 테니까요.

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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