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장원재]조선인 강제징용사실 알린 시라토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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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도쿄 특파원
장원재 도쿄 특파원
2014년 7월 12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기자는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연수 기간을 이용해 자전거 일본 종단을 막 시작한 터였다.

이날 찾은 곳은 비바이(美唄) 시의 탄광 터로 식민지 때 조선인 수천 명이 끌려와 일했던 현장이다. 강제징용을 40년 가까이 연구한 향토사학자 시라토 히토야스 씨(78)가 동행했다.

현장에는 수직갱 입구 두 개와 관리동 건물이 남아 있었다. 시라토 씨는 “정부에서 가스가 분출해 위험하다며 철거하려 해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막아냈다”고 했다. 주민들이 탄광 터를 남기려 했던 것은 일본의 근대화를 뒷받침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시라토 씨는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만큼 넋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로 보존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놓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 보존에 필요한 돈을 탄광을 운영했던 기업에서 받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보존 처리가 이뤄졌고 정부 지정 근대산업유산까지 됐다. 하지만 현장 안내판에 강제징용에 대한 기술은 없었다. 대신 시라토 씨가 현장을 찾는 한국인, 중국인들에게 강제징용의 실상을 설명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홋카이도에서 1999년 펴낸 강제징용 조사보고서를 주도한 것도 시라토 씨였다. 도 관계자가 “진상조사가 가능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가능할지 불가능할지의 문제가 아니다. 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라고 받아쳤다. 그런 그가 “일본에서 처음 야간 조명이 설치된 스키장이 있었던 장소”라며 산 중턱을 가리킬 때는 과거에 대한 자부심도 느껴졌다.

최근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라토 씨 생각이 났다. 이번에 등록된 하시마(端島·군함도)만 해도 한국인들에게는 강제징용의 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에게는 일본의 근대화를 일군 장소이기도 하다. 두 가지 집단적 기억 중 하나를 무시하면 한쪽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해법은 역사의 빛과 그늘을 균형 있게 바라보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번에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 양국 모두의 책임이다. 먼저 일본은 ‘등록 욕심’에 20세기 초까지로 기간을 한정하는 편법을 썼다가 ‘역사의 전모를 이해하게 하라’는 유네스코의 권고를 받고서야 한국과의 협의에 나섰다.

한국은 일본의 등록 준비가 무려 14년 전부터 진행됐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가끔 ‘등록 불가’ 입장을 밝힌 게 전부였다. 역사적 진실을 조사하고 국내와 세계에 정확한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유네스코 등록은 마무리됐지만 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번에 등록된 시설에 강제징용에 대한 기술이 온전히 들어갈 수 있도록 지켜볼 필요가 있다. 비바이 탄광 등 다른 지역에도 비극적 역사의 기억이 시간과 함께 퇴색하지 않도록 지속적 관심을 보여야 한다. 시라토 씨의 말을 빌리자면 “젊은 학자들이 징용 문제를 연구하려 하다가도 우익들의 e메일 공세 등으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숙제가 남았다. 이번 일을 과거사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도 제대로 모르면서 남들에게 왜 모르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설득력도 없거니와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조선인#강제징용#시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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