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1초의 상대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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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나머지 절반을 시작하는 7월 1일.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시간’입니다. 원래 하루는 24시간(8만6400초)이지만 여기에 1초가 더해지는 ‘윤초’가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윤초라는 단어가 생소하죠?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준시는 지구 자전을 기준으로 하는데, 태양과 달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조금씩 변해 오차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8시 59분 59초와 9시 사이에 1초가 더해집니다. 이때 발생하는 1초를 윤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윤초 소식이 전해진 하루 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선물을 받는 사람들의 감사와 환희의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앗싸, 시험 문제 풀 시간 1초 더 생겼다” “1초 늦게 출근해도 된다” “오, 우리 그럼 1초 더 오래 살게 된 건가?”라고 말이죠.

하지만 1초에 절규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왜 하필 평일에 1초가 늘지? 휴일에 1초가 늘어야지” “어쩐지… 지루한 회의시간 정말 안 간다 했다” “이로써 그녀의(?) 임기도 1초가 늘었군요. 절망적이네요”라는 반응들이었습니다.

똑같은 1초라도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절망합니다. 또 누군가는 길고 느긋하게, 누군가는 급박하고 짧게 느낍니다. 동일한 시간의 수직선 위에서 살고 있지만, 시간이 주는 의미는 동일하지 않다는 겁니다. ‘1초의 상대성’이라고 이름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계속되는 동안 국민들은 ‘우리의 시간’과 ‘정부의 시간’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시간의 상대성’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습니다. 5월 20일 이후 전염병이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지만 정부는 늑장 대응했고, 그만큼 국민들은 조급해졌습니다.

최초 감염자와 같은 병실을 쓴 아버지(3번 환자)를 돌본 딸은 “한시라도 빨리 나를 격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당국은 그녀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병원 이름을 공개해 달라.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국민의 요구에도 눈을 감았습니다. 병원을 공개했을 때는 이미 서울시내 주요 병원과 각 지방 거점 병·의원마다 감염자가 돌아다니며 추가 환자를 발생시킨 상황이었습니다.

‘정부의 1초’는 느리게 흘러갔습니다. 정부는 깜깜이 방역체계를 고수하면서 “3차 감염은 없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1초, 2초, 3초를 허망하게 흘려보냈습니다. 처음부터 방역의 그물을 넓게 펼치지 못해 누락된 곳에서 환자들이 발생하자 다시 접촉자를 조사하느라 시간을 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격리 조치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교육, 물품 지급 등을 제때 못해 격리자에게 불편을 주거나, 관리를 못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졌습니다. 1초가 급하고, 소중하다는 걸 느꼈다면 이런 실수가 반복됐을까요.

‘국민의 1초’는 달랐습니다. 정부의 ‘병원명 늑장 공개’에 불신과 불안이 커지자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병원 명단을 공유하며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습니다. 일부 주부들은 일사불란하게 힘을 모아, 출입이 봉쇄된 전북 순창의 한 마을과 폐쇄된 병원의 의료진에게 손수 만든 음식을 보내며 격려했습니다. 이들에게 1초, 2초, 3초는 허망하게 흘려보낼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사태를 종식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의 괴리감이 커지다 보니 SNS에서는 “이 나라를 더는 믿지 못하겠다. 떠나고 싶다”는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단지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란 영토를 똑같이 밟고 살아가고 있는데 왜 ‘국민의 1초’와 ‘정부의 1초’에 괴리감이 생기는 것인지에 깊은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육아카페의 회원은 “위에 계신 분들은 안전한 곳에 있으니 급하지 않은가 보다”라며 “당장 내 아이를 동네 밖에 내보내야 하는 나는 한시도 불안해 참을 수가 없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국민들은 메르스 사태를 보며 ‘시간의 상대성’을 느끼고 정부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커져버렸습니다. 무엇으로 이들의 실망과 불신을 만회할 수 있을까요.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
#1초#상대성#윤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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