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론스타, 앨러모, ‘같이 갑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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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주의 앨러모 요새에서 구입한 얇은 나무판의 그림엽서. 론스타(Lone Star) 아래 ‘텍사스, 외로운 별의 주’라고 쓰여 있다. ‘앨러모를 기억하라’는 미국인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킬 때마다 등장하는 상징적인 문구다.
미국 텍사스 주의 앨러모 요새에서 구입한 얇은 나무판의 그림엽서. 론스타(Lone Star) 아래 ‘텍사스, 외로운 별의 주’라고 쓰여 있다. ‘앨러모를 기억하라’는 미국인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킬 때마다 등장하는 상징적인 문구다.
얇은 나무판의 이 엽서. 미국 텍사스 주 앨러모(Alamo)에서 산 것이다. 앨러모는 미국프로농구(NBA) 팀 근거지 ‘샌안토니오’에서 가깝다. 그림 속 바로크 스타일의 파사드(건물 앞면)는 ‘디 앨러모’라는 선교관인데 1718년 스페인 선교사가 지었다. 그 아래엔 ‘앨러모를 잊지 말라’(1836년 3월 6일)는 글귀가 있다. 뭘 잊지 말라는 것일까.

해답은 ‘텍사스, 외로운 별의 주(州)(Texas Lone Star State)’라는 별명에 들어 있다. 텍사스는 미국 본토 48개 주(알래스카 하와이 제외) 중 가장 크다. 그래서일까. 텍선(Texan·텍사스 주민)은 여느 미국인과 달리 배포가 크다. 특히 도박타운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렇다. 거액을 잃고 따며 화제를 뿌리는 대부분이 텍선이다. 이들은 눈에도 잘 띈다. 카우보이모자에 부츠 차림이어서다. 드넓은 남부 초원에서 멀리 중부 미주리 주까지 몇 주씩이나 소 떼를 몰던 거치디거친 카우보이의 후예답다.

그런 ‘개척의 화신’ 텍사스가 외로운 별이라니. 우린 그 별을 텍사스 주 깃발에서 본다. 이름하여 ‘론스타(Lone Star)’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데, 그렇다. 외환은행을 1조3800억 원에 사서 4조4049억 원에 되팔며 잡음을 일으켰던 사모펀드다. 론스타는 미국 전역에서 본다. ‘텍사코(TEXACO)’란 주유소의 엠블럼이어서다. 두 회사는 모두 텍사스 기업이다. 이렇듯 텍선의 론스타 사랑은 지극하다.

엽서의 디 앨러모 아랜 ‘1836년 3월 6일’이 명시됐다. 그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날은 미국의 국치일이다. 건국 후 최초 전쟁에서 185명이 몰살된 것이다. 당시 텍사스는 멕시코 땅이었다. 그리고 희생자는 ‘엠프레사리오’라 불리던 미국인 투자이민자의 후예. 4년 전 텍사스에서 멕시코 군을 몰아냈다가 보복당한 것이다. 이들이 멕시코에 반기를 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원주민 코만치 족의 방패막이로 이민을 들이고는 토사구팽 식으로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이민정책을 철폐해서다.

1833년 이들은 텍사스를 미국의 한 주로 받아달라고 대륙회의(현 미 연방정부)에 청원했다. 그러자 멕시코도 좌시하지 않았다. 1835년 멕시코 대통령 산타아나 장군이 텍시안(영어사용 텍사스 주민) 정벌에 나섰다. 그 마지막 전투지가 앨러모 요새다. 존 웨인이 주연 감독한 ‘앨러모’(1960년)는 그 전투를 그린 영화다. 당시 희생자는 의용군이었다. 참극의 비보는 대륙회의에 전해졌고 10년 후 미국-멕시코 전쟁(1846년)으로 비화했다. 텍사스는 여기서 미국이 승리해 미국 영토가 됐다. 그리고 ‘앨러모를 잊지 말라’는 아메리칸의 ‘3·1정신’이 됐다.

외로운 별 론스타는 앨러모 참극 직후 생겨났다. 텍사스의 샘 휴스턴 장군이 대륙회의에 군사 지원을 요청할 때 만든 텍사스 깃발의 별이 그것이다. 당시 대륙회의는 주가 늘 때마다 성조기에 별을 하나씩 추가했다. 텍시안의 염원은 거기에 드는 것.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외로운 별’로 남았다. 론스타는 그렇게 해서 텍사스의 상징이 됐다.

미국인은 이렇듯 의중을 ‘상징’에 담아 전달한다. 연방 50개 주가 ‘론스타 주’처럼 제각각 별칭을 지닌 게 그것이다. 중요 순간마다 ‘앨러모를 잊지 말라’ 식의 인상적인 문구를 남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엔 두 개의 표제어가 미국의 심중을 대변했다. 하나는 진주만 피습 이튿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 등장한 ‘우리는 불명예의 시대를 맞았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필리핀에서 호주로 퇴각하던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이 토로한 ‘반드시 돌아오겠다(I shall return)’는 말. 표현은 담백했지만 결과는 무서웠다.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제국주의를 궤멸시킴으로써 불명예 가해자를 응징했다. 맥아더 장군은 진주만 공습의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을 사살하고 필리핀 상륙작전을 통해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도쿄 만에 당도한 전함 미주리호 갑판에서 일본의 항복문서를 받은 것은 그 하이라이트다.

이런 역사를 돌이켜보며 나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심중도 읽는다. 그는 테러를 당하고도 다음 날 트위터에 ‘같이 갑시다!’라고 써서 한미동맹에 관한 굳은 의지를 확인시켜줬다. 난 이 말이 그의, 미국의 진정이라고 생각한다.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앨러모#디 앨러모#파사드#텍사스#외로운 별#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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