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SNS 민심]주연상 누른 조연상의 수상 소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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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아이를 낳은 모든 여성 여러분, 이 나라에 세금을 내는 모든 국민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싸워 왔습니다. 이 평등권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성에게도!”

영화 ‘보이후드’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퍼트리샤 아켓이 작심한 듯 ‘개념’ 수상 소감을 밝히자 객석에서 메릴 스트립과 제니퍼 로페즈가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토머스 페레스 미국 노동장관도 트위터를 통해 “여성이 성공해야 미국이 성공한다”며 호응했다.

이 수상 소감으로 아켓은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줄리앤 무어를 제치고 전체 연관어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아카데미와 함께 언급된 아켓 언급량은 4440건이나 됐다. 여우주연상을 처음 거머쥔 무어의 언급량은 1000건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조차도 대부분 뉴스 콘텐츠였다. 즉, 뉴스가 주목한 키워드와 트위터가 주목한 키워드가 사뭇 달랐던 셈이다. 가치 중심의 뉴스와 화제 중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23일(한국 시간) 진행된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한 SNS의 반응은 꽤 뜨거운 편이었다. 2월 18∼24일 트위터와 블로그, 뉴스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언급한 문서는 4만7847건이었다. 시상식이 열린 23일 하루에만 2만7034건의 문서가 아카데미를 호명했다.

아카데미 시상식과 함께 언급된 전체 연관어 1위는 6517건의 수상이었고 2위는 5443건의 트로피가 차지했다. 3위는 4858건의 ‘버드맨’이 차지했다.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연출한 영화 ‘버드맨’은 이번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주요 4개 부문을 휩쓸었다.

무엇보다 김치 논란이 뜨거웠다. 주인공 리건 톰슨(마이클 키턴)의 딸로 나온 에마 스톤이 극중에서 꽃을 가리키며 “모두 김치처럼 역한 냄새가 나는군(It all smells like fucking kimchi)”이라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SNS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문화를 폄훼한 인종차별 발언인지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치즈 냄새를 언급하며 과민반응이라는 글도 있었고, 어쨌든 기분 나쁘다는 글도 눈에 띄었다. 한 사용자는 “이 발언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오는데 1. 이후엔 영화가 너무 좋아 바로 잊혀집니다, 2. 발언자가 에마 스톤이라서 용서됩니다(응?), 사실 그닥 신경 안 쓰입니다. 서양인에겐 구릴 수도”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버드맨이 흥하든 망하든 나는 오늘도 김치를 먹을 것이다”라는 뚝심 있는 트윗글도 인기를 끌었고 “오스카 시상식 끝나고 친정에 김치 담그러 간다”는 글과 함께 스톤과 김치 담그는 사진을 합성한 트윗도 널리 퍼졌다.

전체 연관어 4위는 4685건의 수상 소감이 차지했다. 이번 아카데미는 ‘수상 소감의 시상식’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라는 평가가 많다. 앞서 언급한 아켓의 수상 소감 말고도 감독상 시상자인 숀 펜은 “누가 이 개자식에게 그린카드(미국 영주권)를 준 거지?”라는 말로 미국의 이민자 정책을 비꼬았다. 감독상 수상자는 멕시코 출신의 이냐리투 감독이었다. 각색상을 수상한 ‘이미테이션 게임’의 그레이엄 무어는 10대 때 자살을 시도한 경험을 회상하면서 “당신도 할 수 있다. 별나고 이상한 채로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 밖에도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티즌포’로 베스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로라 포이트러스는 “스노든의 내부 고발은 단순히 사생활 침해의 문제점을 폭로한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연관어 6위는 여우조연상이 차지했고 7위는 독특한 의상으로 주목받은 재러드 레토가 차지했다. 그는 다음 ‘배트맨’ 시리즈에서 조커 역할을 맡았다. 이어 남우주연상이 8위에 올랐고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빅 히어로’가 9위, 여우주연상이 10위를 차지했다.

“여성, 히스패닉, 흑인, 유색인종은 아카데미에서 투명인간이다.”

87회 아카데미의 백인-남성 중심주의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번 시상식에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오른 20명이 모두 백인이었다. 이에 대한 항의의 목소리는 강렬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오스카 후보를 선정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 약 6300명 중 94%는 백인이고 흑인과 히스패닉은 2%에 불과하다. 77%는 남성이고 평균연령은 62세다. 이 데이터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수상 소감이 빛나는 순간은 사회의 부조리가 더욱 커져 사람들이 강력한 메시지를 요구할 때일지도 모른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조연상#수상 소감#퍼트리샤 아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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