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국회 상징표지 ‘한글 글자체 조형’ 유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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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원 서울대 강사·타이포그래피 연구자
유지원 서울대 강사·타이포그래피 연구자
지난달 26일 새로 교체된 국회 한글 상징표지의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다. 국회 본회의장에 설치작업을 하는 사진을 보면 규모와 비용이 큰 사업이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한글 글자체의 조형적 결과물은 수긍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윤리와 긍지로 직업을 대하는 직업인으로서 글자체 관련 디자인 실무자, 교육자, 연구자들은 글자체의 조형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국회 상징을 한자에서 한글로 바꾼 결정 자체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판단하려는 취지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한자를 한글로 바꾼다는 결정이 내려진 상황에서 그것을 납득할 만한 결과물로 도출해내기까지 행정상으로뿐만 아니라 전문영역으로서 마땅히 검토해야 할 모든 절차가 제대로 실행됐는가를 물으려는 것이다.

‘글자를 전각체로 하여 국회의 품격과 신뢰를 강조했다’는 국회 사무처 보도자료의 내용은 솔직히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들린다. 국회 상징의 한글 글자체 결과물 자체만 보면 여러 의문이 든다.

예산, 제작 방식 등을 고려한 사안 전반의 통합적 리서치가 수행됐는가? 무궁화 도안의 수준은 그대로 적절한가? 가로 세로 비율이 같은 정원(正圓) 바탕이 한 글자 아닌 두 글자가 들어가기에 적당한 환경인가? 특정 소프트웨어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휴먼옛체의 원형이 감지되는데 그 폰트의 사용권은 적절히 취득했는가? 이를 선택해서 로고 타입으로 개작한 이유는 적절한가? 조형 설계에서 시각 보정과 공간 배분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글자가 읽히기만 하면 됐지 조형적 완성도가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한글 사용에 모범을 보인 것으로, 국회가 바른 우리말 사용에 앞장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힌 보도자료의 포부에 부응하기에는, 글자체가 가져야 할 시각적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데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만족스럽게 드러내기엔 조악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답하고 싶다.

정부가 국가 브랜드 로고 일신 등 상당한 세금이 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보도도 접했다.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는 디자인이니만큼 앞으로 정부 디자인과 공공 디자인 사업에서는 담당 디자이너 및 디자인 기관, 자문가들의 이름과 명세를 공개할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전문적인 점검 절차 매뉴얼을 작성할 필요가 있다. 글자 디자인 분야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해 관련 학회에 협조를 요청하면 실무자와 연구자로 구성된 위원회를 소집해 부응할 것이다. 정부 및 국가기관에서 사용되는 한글이 이제부터라도 조형적 측면에서 국민의 문화적 자긍심에 부응하는 수준을 갖추기 바란다.

유지원 서울대 강사·타이포그래피 연구자
#국회 상징#한글 글자체 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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