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디지털 바보마을에서 ‘멀쩡한 바보’로 살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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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지 마세요. 남들도 어리석을 수 있어요. 바보마을에서는 멀쩡한 사람이 바보가 됩니다. ―‘어떤 하루’(신준모 지음·프롬북스·2014년) 》

훔쳐보려던 것은 아니었다. 출근길 지하철은 원하지 않아도 앞 사람의 뒤통수가 내 코에 닿을 만큼 인구밀도가 높다. 내 앞에 선 한 여자가 지인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건네는 인사를 우연히 봤을 뿐이다. 그는 무엇이 재미있었는지 ‘ㅋㅋㅋ’를 두 줄 넘게 치고 있었다.

열차 밖 정거장을 확인하다 건너편 지하철 차창에 비친 여자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자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손가락만 ‘ㅋㅋㅋ’ 하고 웃고 있었다. ‘이제는 휴대전화로 가상의 세계에 접속만 하면 얼굴 근육을 움직이지 않고도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왔구나’ 싶어 기술이 고마우면서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치매라는 용어도 이제는 익숙하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과거에 일일이 기억해야 할 것들을 더이상 기억할 필요가 없어진 현대인들에게 생긴 병이다. 내 주위 사람들의 휴대전화 번호 중 얼마나 많은 번호를 기억하고 있는지 떠올려 보자. 손가락 열 개가 남을 정도다. 인터넷 서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서인지 가상의 웹하드에 온갖 업무자료와 사적인 기록들을 넣어 둔다. 감정, 기억, 지식이 우리 몸에서 온통 빠져나가 디지털로 구성된 또 다른 세계로 전이된 느낌이다.

그렇다 보니 실재하는 것에 대한 혼란이 온다. SNS에 남긴 ‘ㅋㅋㅋ’를 보면 내가 그때 진짜 웃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상대의 말에 반응한 ‘영혼 없는’ 웃음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 맞는지, 내가 온라인이나 모바일을 이용해 기록해둔 게 맞는지 헷갈린다.

모두가 편리하다고 이용하고 있는 현대 문물의 홍수 속에서 나만 혼자 바보가 되고 있는 것인지, 모두가 바보인데 티가 나지 않는 것인지 가끔은 궁금해진다. 내 앞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의 어깨를 붙잡고 묻고 싶어진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디지털#바보마을#멀쩡한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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