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거 野]4월 천하, 4할 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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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이면 언론에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4할 타자다. 2012년에는 김태균(한화)이 89경기를 치를 때까지 4할을 유지했고, 지난해에는 배영섭(삼성)이 5월 초까지 4할을 넘겨 화제가 됐다.

22일 현재 타격 선두인 롯데 손아섭은 타율 0.380으로 4할 타율에 근접해 있다. 지난주만 해도 LG 박용택과 삼성 박석민이 4할을 훌쩍 넘기며 타격 1, 2위를 달렸지만 최근 2경기에서 1안타씩에 그쳐 타율이 3할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4할 타자가 나온 것은 모두 28차례다. 하지만 대부분 야구의 틀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던 20세기 초를 전후해 쏟아졌고 1941년 테드 윌리엄스(보스턴·1918~2002)가 0.406을 기록한 뒤 70년 넘게 나오지 않고 있다. 당시 메이저리그 3년차였던 윌리엄스는 시즌 최종전 연속 경기에 출전하지 않아도 4할 타자(0.3999)가 될 수 있었고 감독도 쉬라고 권유했지만 “반올림으로 4할 타자가 되기는 싫다”며 출전을 강행해 8타수 6안타를 몰아쳐 당당한 4할 타자가 됐다.

윌리엄스 이후 최고 타율의 주인공은 1994년의 토니 그윈(샌디에이고)이다. 그는 8월에 열린 10경기에서 0.475를 기록하며 타율을 0.394까지 끌어올렸지만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4할 타자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1982년에 일본에서 뛰던 MBC 백인천이 0.412로 수위 타자가 됐다. 2위인 OB 윤동균보다 7푼이나 높았다. 당시만 해도 일본과 한국의 수준 차가 너무 컸기에 나올 수 있었던 기록이었다. 게다가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대비해 최동원 김시진 등 에이스 투수들이 프로에 합류하지 않은 상태였다. 경기 수도 적었다. 윌리엄스는 143경기를 뛰며 4할 타자가 됐지만 백인천은 그 절반 정도인 72경기에 출전했다. 이후 4할 타율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 한화 코치다. 1993년 데뷔 시즌에 신인 최다 안타(133개)를 때렸던 그는 이듬해 8월 21일 4타수 4안타를 몰아쳐 0.400을 채웠지만 결국 0.393으로 시즌을 마쳤다. 한국보다 역사가 훨씬 긴 일본 프로야구에선 한 번도 4할 타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윌리엄스 이후 메이저리그의 최대 수수께끼는 ‘4할 타자의 실종’이다. 이를 놓고 ‘투수와 수비수의 실력 향상’ ‘마운드 분업 정착’ 등 여러 분석이 쏟아졌다. 그중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시한 사람은 진화론의 대가인 스티븐 제이 굴드다. 윌리엄스가 대기록을 세운 1941년에 태어난 그는 저서 ‘풀하우스’를 통해 진화론의 시각으로 4할 타자의 ‘절멸’을 설명했다. 굴드는 1880년부터 100년 동안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기록을 분석해 평균 타율은 100년 동안 별로 변하지 않았지만 타율 분포는 평균을 중심으로 좁아진 것을 확인했다. 야구가 진화하면서 평균을 크게 뛰어넘는 타자도,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타자도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4할 타자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내가 사용한 절멸이라는 단어는 종의 죽음과 같은 것이 아니라 불면 꺼졌다가 다시 켤 수 있는 촛불과 같은 것”이라며 실낱같은 희망을 남겨 뒀다.

2012년 김태균은 0.363으로 시즌을 마쳤다. 지난해 배영섭은 3할도 지키지 못했다(0.295). 손아섭이 4할 타율에 근접해 있지만 경기를 치를수록 타율은 떨어질 것이다. 그래도 ‘꿈의 4할’을 거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팬들은 즐겁다. 이룰 수 없다고 꿈도 못 꾸랴.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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