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4D는 과연 영화의 미래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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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2010년 11월, 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국내 최초의 4D(입체상영에다 의자가 움직이고 바람, 물방울, 향기까지 분사하는 오감 자극 첨단영화) 영화인 ‘나탈리’를 4D 전용관에서 본 것이다. 에로영화를 온몸으로 느낀다는 기대감에 한껏 고무된 나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충격과 공포에 빠지고 말았다.

어떤 기승전결도 없이 첫 장면부터 바로 베드신! 나는 기분이 매우 묘해졌다. 수많은 할리우드 액션영화를 이미 입체로 본 적 있는 나이지만, 베드신을 입체로 본 건 난생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구렁이들 교미하듯 뒤엉킨 남녀는 내 눈앞에서 동동 떠 있었다.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안 움직이는 것도 아닌, 이 놀라운 정중동의 미학!

나의 귓불이 한창 발갛게 달아오른 바로 그 순간, 당혹스러운 사태가 벌어졌다. 돌연 의자가 ‘윙’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맷돌처럼 미친 듯이 돌아가는 게 아닌가. 초등생 시절 놀이공원에서 ‘커피 잔’이란 이름의 뱅글뱅글 도는 놀이기구를 탄 이래 이토록 어지럽고 황망한 시추에이션은 처음이었다. 남녀 배우의 정사가 더욱 뜨거워지자 상영관의 의자들은 앞뒤로 파도를 타듯 껄떡껄떡대면서 폭풍우를 만난 일엽편주처럼 웨이브를 탔고, 이내 나는 뱃멀미가 나 토할 지경이 되었다.,

영화 속 정사가 절정을 향해 치닫자, 올 게 오고야 말았다. 의자가 뒤로 발라당 자빠지더니 안마의자처럼 부르르르 떨리는 것이 아닌가. 성적인 흥분이고 뭐고 간에 그 순간 나는 이 지옥 같은 극장에서 벗어나고픈 일념뿐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빠져나올 땐 관객들끼리 서로 눈이 마주쳐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렇다. 4D라는 첨단기술은 관객의 엄청난 몰입을 요구하는 에로영화에는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자, 그럼 4D가 액션영화에는 최선일까? 이것이 궁금해진 나는 얼마 전 할리우드 액션블록버스터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3월 26일 개봉)를 4D로 보기 위해 전용상영관을 찾았다. 액션이 펼쳐질 때마다 의자는 어떻게 움직일지, 바람은 어떻게 뿜어 나올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섹시스타 스칼릿 조핸슨이 등장할 땐 극장 사방에서 페로몬이라도 슉슉 뿌려주지 않을까, 하는 저질스러운 기대도 품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시작부터 무지막지한 액션이었다. 성조기가 그려진 유치한 방패를 신무기랍시고 들고 설치는, 뇌는 없고 근육만 있는 것 같은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 그가 악당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이단옆차기를 날릴 때마다 4D 상영관의 의자는 미친 듯이 요동쳤다. 카메라도 핸드헬드(카메라를 지지대에 받치지 않은 채 어깨에 올려놓고 마구 흔들리며 찍는 촬영 방식)로 찍어대 어지러워 죽을 지경인데 의자까지 들썩이니 좀 전에 먹은 삼겹살에 맥주 한잔이 다시 밖으로 나올 지경이었다.

4D 효과가 모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호리병 같은 야릇한 각선미를 가진 여배우 스칼릿 조핸슨이 몸에 착 달라붙는 전투복을 입은 채 쌍권총을 뽑아 악당들에게 총알을 마구 날려대는 장면에선 예기치 못한 쾌감이 밀려왔다. 조핸슨이 총알을 ‘다다다다’ 하고 날릴 때마다 의자 엉덩이 부분에서 뾰족한 탐침봉 같은 것들이 일제히 위로 솟구쳐 올라 엉덩이 곳곳을 콕콕콕콕 찔러주는 것이 아닌가. 뭐지? 조핸슨이 내 엉덩이에다 마구 총알을 박아대는 것 같은 이 묘한 감촉의 정체는. 순간, 본전은 뽑았다는 흐뭇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내 불타오른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콜라에 꽂은 빨대에 입을 대었다. 순간, 의자는 또 오두방정을 떨었다. 나는 콜라 한 모금 안심하고 빨지 못한다는 극도의 불안감에 다시 휩싸였다. 주인공이 주먹 하나만 날려도 의자가 들썩거리다 보니 내 오른쪽 옆에 앉은 50대로 보이는 남자는 연신 “어이쿠, 어이쿠쿠” 하고 신음을 내면서 허리디스크라도 재발한 듯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내 왼쪽에는 만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젊은 연인이 나란히 앉아 여성이 남성의 오른 어깨에 볼을 살포시 묻은 모습이었는데, 의자가 하도 발광을 하다 보니 남자의 어깨가 ‘흉기’가 되어 여자의 볼을 연신 찔러대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이 커플의 모습을 보고 내가 낄낄 웃고 있는데, 돌연 의자 등받이 상단에서 분출된 공기가 ‘슉’ 하고 내 귓불을 때렸다. 화들짝 놀란 나는 자칫하면 찔끔 오줌을 지릴 뻔했다.

아! 2시간 10분이 넘는 상영시간이 드디어 지나고 영화는 끝났다. 천근만근이 된 몸을 일으켜 4D 의자에서 간신히 일어난 나는 어르신들이 “삭신이 쑤신다”고 말씀하실 때의 심정이 어떠한 것인지를 실감하였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복기해 보았는데,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윈터 솔져’가 뭐였지? 배신자가 누구였지? 의자가 뇌를 하도 흔들어놓은 통에 기억도 날아가 버린 것이다. 그 순간, 평범하고도 놀라운 진리를 나는 깨달았다. ‘새로운 기술이 언제나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는 사실을.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란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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