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아랫집도 윗집도 “우린 억울… 그 집이 제정신 아니에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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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 댁은 어떻습니까?]
1008호와 1108호, 8개월간 무슨 일이…


《서울 수락산 아래 고즈넉하게 터 잡은 A아파트(1997년 준공). 2008년 학원 강사 윤모 씨(45) 눈에 이 아파트가 들어왔다. 하루 8시간 넘게 강의를 한 뒤 돌아와 쉬기에 최상의 환경이었다. 그해 10월 윤 씨 부부와 아들(9)은 이 아파트 1108호(윗집) 주민이 됐다. “조용하고 여유로웠거든요. 그런데 아랫집이 이사 오면서부터…. 저희 가족은 공포에 질려 살고 있어요.”
지난해 5월 24일 주부 황모 씨(45·여)는 꿈에 부풀어 1008호(아랫집)로 이삿짐을 들였다. 황 씨는 1999년 43㎡ 빌라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뒤 30년 넘은 낡은 임대아파트를 전전했다. 샤워기를 틀면 녹물이 나오는 곳이었다. A아파트는 전세였지만 결혼 14년 만에 입성한 민영아파트였다.
“이사 온 날 밤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됐어요. 윗집에서 24시간 천둥치는 소리를 내면서 ‘우린 조용하다’고 발뺌하는데 미칠 지경입니다.”
평화로워 보였던 A아파트. 그 안에서 층간소음 전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 씨는 “윗집에 아무리 항의해도 소용없다”며 지난해 말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민원을 넣었다. 윗집에 항의하러 갔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며 최근 윗집 앞에서 신문지를 깔고 노숙을 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7일과 8일, 윤 씨와 황 씨를 각각 만나 8개월간의 갈등기를 들었다. 그들은 같은 상황을 완전히 다르게 이야기했다.》

2013년 5월 31일 PM 9:00 딱 5분
윗집: 인터폰이 울렸다. “경비실인데요. 아랫집에서 항의가 들어왔어요.” 아들과 아들 친구 2명이 집에 온 지 5분도 되지 않았다. 아랫집은 일주일 전 이사 오던 날 밤늦게까지 못을 박지 않았나. 우린 참았는데….
아랫집: 일주일째 소음에 시달린다. 오늘 밤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쿵쾅거린다. 경비실을 찾았다. “애들 5분 있었다는데요.” 우리 집 천장에서 분명 30분 넘게 소리가 났는데 ‘딱 5분’이라고 거짓말이다. 일주일을 참은 나는 졸지에 5분도 못 참는 예민한 사람이 됐다.

65일 낮 12:10 첫만남
윗집: 초인종이 울렸다. “아래층에서 왔어요.” 아이 뛰는 소리가 나서 왔단다. “이사 온 뒤로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요.” 아이는 학교에 가고 없었다. 웃으며 말했다. “아내랑 같이 커피 마시고 있었어요. 저희 집 소리는 아닌 것 같아요.”
아랫집: 내가 다 잘못 들었단다. 아이가 없었더라도 그들이 집에 있었다면 아이 뛰는 소리와 비슷한 소음을 낸 건 사실 아닌가. 저들은 소음도 내지 않고 날아다닌다는 건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될 걸 또 발뺌이다. 나를 소리의 근원도 구분 못하는 바보로 만드는 태도가 불쾌하다.

613 PM 8:00 햇볕 정책
윗집: 아랫집에서 또 왔다. TV 소리가 꽝꽝 울린단다. 우리 집엔 TV가 없다. ‘층간소음 실험’을 한다며 집에 들어와 식탁 의자를 끌더니 갑자기 “우리 애가 보던 책이 있는데 이 집 아이 줄게요”라고 한다. 누명을 씌우다 말고 돌변해 선물을 준다니. 당황스럽다. “괜찮아요.”
아랫집: 분명 TV 소리였는데…. 실험을 해 소음원을 명확히 해보면 오해가 풀릴 것 같다. 실험 결과 평소 듣던 소리인지 애매하다. 이참에 친해지면 소음도 달리 들리려나. 어렵게 책을 주겠다고 말을 꺼냈더니 “됐어요”하며 단칼에 거절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여러 번 차 마시러 오라고 제안했다. 그때마다 “재수 없다”는 듯 쳐다보더니 또 거절이다. 역시 상종 못할 사람이다.

아랫집 황모 씨가 8개월간 계속되는 윗집 층간소음으로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괴로워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윗집 윤모 씨가 아랫집 황
 씨가 찾아와 항의한 날짜와 항의 내용을 기록해 놓은 달력. 지난해 6월에만 황 씨가 5차례 항의를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아랫집 황모 씨가 8개월간 계속되는 윗집 층간소음으로 불면증에 시달린다며 괴로워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윗집 윤모 씨가 아랫집 황 씨가 찾아와 항의한 날짜와 항의 내용을 기록해 놓은 달력. 지난해 6월에만 황 씨가 5차례 항의를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6월 14일 PM 8:00 자작극?
윗집: 새벽녘. 어디선가 쿵쾅대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녹음했다. 우리 집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다. 이날 저녁 아랫집에서 항의하러 왔기에 새벽에 녹음한 소리를 들려줬다. “부부끼리 소리 내고 녹음한 거죠?” 자작극이란다. 감정이 폭발해 따졌다. “저희 집에서 이상한 소리 낸다고 소문내시는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면 어쩌려고 이러세요?” 아랫집 여자가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른다. 항의를 받을 때마다 오해를 풀려고 노력했지만 대화가 안 된다는 사실만 거듭 확인할 뿐이다.
아랫집: 오후 8시. 소음이 극에 달했다. 지금까지는 아이 뛰는 소리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다. 부부가 ‘쿵쿵’ 찧으며 뛰는 소리다. 몇 번 항의했다고 보복 소음을 내는 거다. 윗집은 의도적으로 베란다 문을 수십 번씩 ‘드르륵 쾅’ 닫는다. 볼링공을 내리꽂고 거실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녹음한 걸 틀더니 자신들은 단 한 번도 소음을 낸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 내가 다 잘못들은 거란다. 사과해야 할 사람이 고소한단다.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7월 3일 PM 10:00 문 열어요
윗집: 감정 통제를 못하는 아랫집.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층간소음 살인도 나지 않았나. 아내에게 당부했다. “나 없을 땐 문 열어 주지 마.” 며칠 후 아내는 샤워를 하다 말고 전화했다. “또 왔어. 무서워.” 10분 넘게 문을 두들긴단다. 부리나케 퇴근해 문을 열려는 순간 아랫집에서 올라온다. “당장 문 열어 봐요.” 문을 열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린 일상적인 소음조차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문 앞에서 설명했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집에 있지도 않은 인라인스케이트, 볼링공 이야기를 하며 ‘보복 소음을 낸 걸 인정하라’는 말을 30분째 반복하더니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른다. 정신이 아픈 사람 같다.
아랫집: 망치로 내려치는 소리가 난다. 샤워기를 욕조에 대고 일러 두들기는 소리가 귀를 찌른다. 천장이 무너질 것 같다. 올라갔다. 없는 척이다. 화가 나 속이 터질 것 같다. 이 집 여자가 들어가는 걸 분명히 봤다. 아이를 우리 집 욕실에 세워 놓고 난 윗집 앞에 서서 휴대전화로 물었다. “윗집에서 물 쓰는 소리 나니?” 소리가 난단다. 보복 소음을 내더니 이젠 아예 없는 척하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윗집 아저씨가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올라갔다. 자기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시켰단다. 내가 환청을 듣는단다. 자신들은 한 번도 소음을 낸 적이 없다는 말만 30분째다. 윗집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었다.

7월 13일 PM 7:00 소음 실험
윗집: 이대로 살 수는 없다. 아파트 관계자 8명과 우리 부부, 아랫집 부부가 모여 층간소음 중재위원회를 열었다. 중재위원 절반은 우리 집에, 절반은 아랫집에 간 뒤 우리 집에서 소음을 낸 다음 그 소리가 아랫집에서 들린다는 소음이 맞는지 확인키로 했다. 문을 쾅 닫고 의자를 끌었다. 아랫집 여자가 말했다. “평소 듣던 소음이 아니네요.”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렸다.
아랫집: 그 소음이 아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윗집은 문을 닫고 목격자도 없이 고의적으로 소음을 낸다. 새벽에 날 괴롭히려고 일부러 마늘을 한가득 빻는다. 내가 가면 다 치워버린 뒤 말한다. “저희는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다른 사람이 있는 데서 평소 하던 짓을 똑같이 했겠는가? 집에 있으면서도 없는 척 거짓말하는 이들이 한 실험을 어떻게 믿나.

10월 30일 AM 1:00 현장 발각
윗집: 장인어른 장례를 마치고 처가 식구가 모였다. 그녀가 또 올라와서 쏘아붙인다. “지금 몇 시인데 이렇게 떠드세요?” 내가 묻고 싶다. 지금 몇 시인데 남의 집에 오는 건가. 날이 밝은 뒤 와야 정상 아닌가. “죄송합니다.” 소음을 낸 건 사실이기에 일단 사과했다.
아랫집: 우당탕탕, 쾅. 새벽 1시에 미치지 않고서야. 중재위원이 속아 넘어가자 대놓고 보복 소음이다. 불은 켜져 있는데 문을 안 열어준다. 한참 뒤 열더니 경멸의 눈빛으로 쏘아본다. 친척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집안을 뛰어다니는 게 보이는데 가족회의 ‘좀’ 했단다. 저 입에서 언제쯤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까.

2014년 1월 4일 AM 6:00 노숙 시위
윗집: 4일 오전 9시 전화가 왔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상담사입니다. 새벽부터 층간소음이 난다고 아랫집에서 민원이 들어와서요.” 무슨 소리인가. 우린 집에 없다. 4일째 집을 비우고 여행 중이다. 상담사에게 호텔에서 찍은 가족사진과 톨게이트 영수증을 찍은 사진을 증거로 보냈다. 이번에야말로 그동안 우리 집을 오해했다는 걸 확실히 알았을 테지. 다음 날 오후. 여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자 앞집 아줌마가 우릴 잡는다. “이 댁 없는 동안 난리가 났었어요. 새벽에 동네 사람 다 깨고. 아침에 쓰레기 버리러 나오는데 시커먼 사람이….”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했다.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우리 집 앞에서 일어났다. 소름 끼친다. 우리 가족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랫집: 새벽 6시. 소스라치며 깼다. 돌덩어리를 들어올린 뒤 ‘꽝’ 내동댕이친다. 8개월을 시달린 소음에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윗집에 가 문을 30분 넘게 쳤다. 없는 척이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윗집 문 앞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노숙 3시간여. 전화가 왔다. 이웃사이센터다. “윗집 비었대요.” 그 말을 믿으라고? 윗집은 거짓말의 달인이다. 아이를 윗집 앞에 대신 앉혀 놓고 경비실로 갔다. 4일 치 폐쇄회로(CC)TV를 돌려 봤다. 1일 그들이 나간다. 돌아오는 모습은 없다. 노숙 5시간. 철수했다. 그날 난 윗집뿐 아니라 다른 집도 소음원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오해가 풀린 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주범이다. 단독 범행에서 공동 범행으로 바뀌었을 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과했다면 내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 날 괴물로 만든 건 그들이다.

손효주 hjson@donga.com·신광영 기자
#층간소음#칵테일파티 효과#이웃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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