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3번 A장조를 듣습니다. 두 번째 악장 스케르초. 피아노의 가만히 두드리는 듯한 반주와 함께 리드미컬한 첼로 선율이 흐릅니다. 함께 듣던 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합니다. “이 음악, 국악 같은데?”
어, 듣다 보니 그러네요. 덩∼ 덩∼ 덩∼따 쿵따…. 국악 무대에서 자주 듣던 자진모리장단과 비슷합니다. 끝을 살짝 들어올리는 첼로의 ‘쿵따’ 리듬이 특히 그렇습니다. 베토벤이 우리 선조들의 악보를 입수해서 연구했나?
비슷한 예가 또 있을까요. 말러의 교향곡 5번 c샤프단조 중에서 3악장 스케르초는 전체 관현악의 휘몰아치는 합주와 광포한 리듬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들을 때마다 우리 굿거리장단을 떠올리게 합니다. 덩기덕 쿵 더러러러….
말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약했으니까 누군가가 채보한 한국음악 장단을 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그런 상상은 필요 없죠. 대륙과 시대를 가로지르는 ‘비슷함’은 예술작품 속에서 얼마든지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요. 20세기 작곡가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 중 ‘별들의 피의 기쁨’ 부분도 자진모리장단을 연상케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메시앙 역시 한국음악을 연구한 바는 없습니다.
이처럼 국악 장단을 연상시키는 서양음악 작품들이 대체로 3박자의 스케르초 악장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닙니다. 세계 여러 문화권의 음악 중에서도 우리 전통음악은 흥겨운 3박자가 발달한 편에 속합니다. 서양음악의 ‘스케르초’는 ‘해학’이란 뜻입니다. 우리 음악이 갖고 있는 해학미와도 통하는 것 같습니다.
19세기 말 러시아 체코 등을 필두로 서양음악계에 민족음악 운동이 대두하면서 여러 작곡가가 자국의 고유한 춤곡을 서양음악 전통에 녹여 넣으려 시도했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가 서구 음악문화와 접촉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풍요한 3박자 문화의 자산을 이용해 서구인들이 찬탄할 만한 다채로운 스케르초 악장을 써냈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입니다.
11일 오후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마유경 첼로 독주회에서는 첼리스트 마유경과 피아니스트 황보영이 위에 소개한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3번을 협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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