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나에게 선물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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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기념하여 마라톤을 완주한 분이 있다. 선천적으로 폐활량이 적어 늘 헉헉거리며 사는 나는 마라톤이라는 말만 들어도 숨이 찬다. 그런데 그분이 마라톤 완주를 결심한 이유가 참으로 신선하다.

“60년을 살고 다시 한 살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애쓴 내 몸에 선물을 해주고 싶었어요. 뭘 할까 궁리하다가 마라톤을 완주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환갑의 나이에 못한다면 내 평생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처음에는 동네 한 바퀴부터 시작하여 5km, 10km를 뛰다가 마침내 1년 만에 대회에 출전하여 4시간 12분대로 첫 마라톤 완주에 성공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아니, 부럽게 했다.

“그건 선물이 아니라 몸을 더 힘들게 한 거잖아요.”

그렇게 농담은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몸에 대한 진정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거리도 뛰지 못할 거라며 지레 겁을 먹는데 그분은 자신의 몸이 42.195km를 달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그렇게 강인한 몸이 되게끔 보살피고 훈련시키고 다듬어 그 믿음을 현실화했다.

지난주에는 세계적인 스타 발레리노인 로베르토 볼레의 ‘오네긴’을 보았다. 숨이 막히게 감동적인 볼레의 춤을 보면서 인간의 몸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그의 몸이 만들어내는 선(線)은, 어쩌면 인간의 몸을 창조한 신(神)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넋 놓고 감탄하기 전에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고된 훈련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터뷰에서 볼레는 30년 동안 하루에 6, 7시간씩 연습했다고 말한다. 우월한 몸매를 타고난 건 사실이지만 결국 자신의 몸을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만들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마라톤처럼 긴 인생길을 몸과 동행한다. 그런데 정작 몸에 대한 선물에 너무 인색하거나 지나치게 과하다. 날씬한 몸매를 만든다면서 운동보다는 수술을 하거나 혹은 무조건 몸을 굶기거나 또는 몸에 좋은 보양식을 찾아다니며 과한 영양섭취로 오히려 몸을 망가뜨리곤 한다. 사실 몸을 위한 시간을 하루 30분만 할애해도 마라톤 완주까지는 몰라도 5km 정도는 달릴 수 있고, 발레리나 수준은 아니어도 지금보다는 더 유연하고 경쾌한 몸을 가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나도 이제부터 인생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한 살이 된다면 그때 내 몸에게 무엇을 선물할까를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험한 세상 살아오면서 부딪치고 넘어지고 멍든 나의 몸에 어떤 위로와 믿음을 줄까? 진지하게 고민해볼 참이다.

윤세영 수필가
#몸#건강#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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