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로 가는 길]<4> 선진국에서 배운다 ―학교마다 창업 지원 본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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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되는 아이디어라도 창업상담… 캐나다 대학은 상상공장

캐나다 밴쿠버 사이먼프레이저대(SFU)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벤처커넥션’ 사무실에서 창업 준비생들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휠체어’에 앉아 특수 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벤처커넥션의 도움으로 모비세이프라는 회사를 차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후세인 뎅하니 씨, 아리나 아부나비 씨, 마리암 솔레이마니 씨. 밴쿠버=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캐나다 밴쿠버 사이먼프레이저대(SFU)의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벤처커넥션’ 사무실에서 창업 준비생들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휠체어’에 앉아 특수 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벤처커넥션의 도움으로 모비세이프라는 회사를 차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후세인 뎅하니 씨, 아리나 아부나비 씨, 마리암 솔레이마니 씨. 밴쿠버=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키 강사로 일하던 제시 롭슨 씨(26)는 어느 날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스키, 스노보드 등 겨울 스포츠를 실내에서 연습하도록 하면 어떨까.’ 하지만 아이디어를 어떻게 사업으로 연결시킬지 막막했다.

그래서 대학에 갔다. 23세 때 캐나다 밴쿠버의 사이먼프레이저대(SFU)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자연스럽게 대학 내 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벤처커넥션’의 도움을 받았다. 벤처커넥션은 그에게 사무실을 제공하고 멘토를 연결시켜 줬다. 그는 지금 ‘액션스포츠콘셉츠’라는 회사를 차리고 사업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다.

창조경제는 대규모 생산시설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제다. 두뇌자원을 키우고 발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아일보와 전략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코리아가 함께 만든 ‘동아·베인 창조경제지수’에서 아이디어 창출 단계 1위를 차지한 캐나다의 저력은 대학에 있었다. 캐나다의 대학들은 아직 씨앗에 불과한 아이디어를 벤처기업으로 열매 맺게 해주는 ‘상상공장’ 역할을 하고 있다.

○ 아이디어가 있으면 대학으로 오라

지난달 18일 찾은 SFU 벤처커넥션은 조그만 사무실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아이디어를 갖고 온 학생들을 위해 대학이 마련한 인큐베이팅 공간이다. 여기서 만난 학부생 아리나 아부나비 씨와 후세인 뎅하니 씨는 자동차 에어백처럼 휠체어에 특수 폼(foam)을 설치해 사고를 막는 시스템을 설계 중이었다.

수업시간에 만난 두 사람은 휠체어 사고가 많다는 데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 학생 6명으로 팀을 만들었다. 관련 기술을 특허 출원하고 모비세이프라는 회사도 차렸다. 모두 벤처커넥션의 도움을 받았다. 아부나비 씨는 “수업에서 머리로 배운 것을 실제 제품으로 만들고 팔다 보니 현실적인 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벤처커넥션의 재니스 오브라이언 프로그램 매니저는 “말이 되든 안 되든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와도 모두 상담해 준다”며 “사업화에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안 되는 것인지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밴쿠버의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는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된 ‘스타트업 위크엔드’를 벤치마킹한 프로그램을 조만간 정식 과목으로 채택할 예정이다. 창업에 관심 있는 대학생과 교수, 일반인이 팀을 꾸려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54시간 동안 아이디어부터 실제 창업까지 가상으로 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교육 환경에는 창업을 경험한 인재를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가 한몫했다. 밴쿠버의 대학들은 교육 과정에 ‘창업 경험’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캐나다 전역에 본부를 두고 벤처기업 창업과 운영을 지원하는 CYBF의 줄리아 딘스 대표는 “캐나다 기업들은 창업을 경험한 인재를 채용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며 “어떤 직군에서도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주어진 업무를 성공시키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세계 최고의 상상공장을 만들자”

밴쿠버는 투자 기반이나 사업 환경 등 실질적인 벤처 인프라는 아직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못 미친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연결시키는 개방성은 실리콘밸리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리콘밸리의 벤처들이 정보기술(IT) 위주인 반면 밴쿠버의 벤처는 일상생활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살린 것이 많은 까닭이다.

캐나다 대학은 창업의 실전무대와 다름없는 미국 실리콘밸리 스탠퍼드대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사업화 자체보다 창업에 나설 인재 육성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다. 대학에서 태어난 뛰어난 연구들이 사업화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우선 캐나다 대학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더 유리해 보였다.

이런 점 덕분에 밴쿠버는 지난해 시장조사업체 스타트업 게놈이 선정한 ‘신생 벤처를 위한 가장 매력적인 도시’ 20곳 중 9위를 차지했다. 특히 인재(4위)와 창의적 사고방식(2위)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 온라인·모바일 사진공유 커뮤니티인 플리커, 트위터에 인수된 정보수집 서비스업체 서미파이는 밴쿠버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벤처다.

캐나다의 창조자원 발굴은 자국민에 그치지 않는다. 캐나다 연방 이민부는 지난달 1일부터 창업비자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자국 젊은이의 일자리를 빼앗는 취업비자 대신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는 창업이민을 활성화하기로 한 것이다. 자국을 세계 최고의 상상공장으로 만들기 위해 이민의 문호를 여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제이슨 케니 연방 이민부 장관은 “개인 벤처를 원하는 각국의 엘리트들을 유치해 캐나다판 실리콘밸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밴쿠버=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캐나다#상상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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