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생일이 같은 다빈치와 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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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6일 22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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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4월 15일을 누군가의 생일로 기억해야 한다면 김일성이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태어난 날로 기억하고 싶다. 다빈치는 먼 나라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세계사에 우뚝한 창조적인 인간으로 탄생 561주년이 지난 이 순간도 인류의 상상력과 창조성을 자극한다. 그래서 다빈치의 생일은 축복의 날이라 할 만하다.

김일성은 민족사에 씻지 못할 비극과 재앙을 안긴 파괴적인 인간이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북한 주민들을 굶겨 한민족 수백만을 희생시켰다. 세습 독재를 위해 주민들의 행복권은 물론이고 기본 인권마저 유린했다. 며칠 전 어떤 젊은이들이 “김일성 생일, 무사히 넘어갈까요?” 하며 걱정했다. 대한민국 국민이 건국 대통령 이승만, 부국 대통령 박정희의 생일은 모르면서 김일성의 생일은 기억하고 신경 써야 하다니….

김일성 생일은 ‘고속 승진’했다. 북한은 1962년 4월 15일 김일성의 50회 생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하고 1968년에는 ‘명절 공휴일’로 승격시켰다. 1972년 그의 환갑 때 생일 행사를 본격화하고 1974년에는 ‘민족 최대 경사의 날’로 제정했다. 1994년 그가 사망한 뒤 ‘태양절’로 높였다. 주민 굶긴 인간 태양….

김일성이 사망한 지 19년이 되었지만 우상 숭배는 계속되고, 생일기념행사에 엄청난 돈과 물자를 쏟아 붓는다. 재작년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 초상화 1700만 개를 교체하고 이들의 영생탑도 4000개나 세웠다. 우상놀음 뒷전에서 보릿고개 춘궁기를 맞은 주민들의 배는 등짝에 붙었다. 그해 유니세프 조사 및 국제 추정에 따르면 5세 미만의 함경도 양강도 강원도 어린이 가운데 80% 이상이 영양실조 상태였다. 제 부모 제 자식 생일에 고깃국 한 그릇 못 먹이는 주민들에게 ‘죽은 인간 태양의 영생’이 무슨 의미일지 궁금하다. 올해(그제) 101회 김일성 생일에는 특별 식량 배급도 없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북한 지배집단은 이날 그의 시신 앞에 줄지어 서서 ‘불멸의 혁명업적’ 운운하며 충성을 맹세했다. 극단의 반(反)민족 반민주가 불멸의 업적이란 말인가.

김정일 우상화도 만만찮다. 1942년 2월 16일이라는 김정일의 생일은 ‘광명성절(光明星節)’로 불리며 김일성 생일에 이어 북한에서 두 번째로 큰 명절이다. 태양절과 마찬가지로 각종 전시회와 체육대회, 예술 공연, 주체사상 연구토론회, 김정일화(花) 전시회 등의 행사가 열린다.

태양절도 광명성절도 세계가 비웃는 시대착오이다. 북한 지배집단이 핵무기와 함께 개인숭배로 체제를 지탱하겠다고 한다면 헛된 꿈이 되기 쉽다. 아무리 단속해도 자유와 민주와 문명의 햇살을 다 막지는 못할 것이다. 많은 주민의 마음속에는 태양도 광명성도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옛 소련의 스탈린과 레닌, 그리고 동유럽의 독재 우상들이 어떤 비운을 맞았는지 북한 지배집단도 보았으리라.

1년 전에 등장한 세습 3대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 같은 방식으로는 오래갈 수 없다는 통찰을 했어야 했다. 북한 지배집단은 김정은 체제의 출범을 정상 국가로 탈바꿈할 기회로 삼았어야 했다. 핵폭탄을 껴안고 세계를 협박해 생존을 도모하기보다는, 핵을 버리고 세계의 지원 아래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진보이고 순리이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국제사회가 ‘스위스 유학파’ 김정은에게 걸었던 일말의 기대는 무너지고 있다. 김정은을 앞세운 북한 지배집단은 변화를 두려워해 변화보다 더 위험한 수구(守舊)모험주의로 치닫고 있다. 스스로 체제 위기를 재촉하는 형국이다.

저들의 모험은 동시에 대한민국을 위험에 빠뜨린다. 저들은 도발 위기를 고조시키다가 잠깐 멈춰 대한민국이 느슨해지면 기습적으로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 천안함 폭침이 그랬다. 대한민국은 북이 잠시 숨을 고른다고 해서 본질의 변화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광기(狂氣)로 무장한 집단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국내의 국론 분열과 그 책동부터 관리해야 한다. 국내 종북 및 대북 부화뇌동 세력은 북한의 광기를 부추기고, 대한민국 정부와 군(軍)의 효과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들며, 그래서 다시 북한의 모험과 도발을 부채질한다. 북한 지배집단은 우리 민족을 ‘김일성민족’이라고 날조 규정하고,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을 김일성민족끼리라는 뜻으로 쓰며 남쪽의 종북세력과 손잡고 심리전 선전전 정치공작을 펴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대북정책 못지않게, 북한의 반민족적 책동에 대응하려는 국민의 의지와 행동을 단단히 결집할 수 있는 대내 정책을 펴야 한다. 대한민국의 내부 결속을 이끌어내는 노력은 대북 대응의 기초 중 기초이다.

박근혜정부는 북한의 민주화와 자유민주체제로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국내 기반 조성, 북한 관리, 주변국과의 복합 외교를 성공시켜야 한다. 이것이 18대 대통령 정부의 핵심 시대정신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김일성 생일을 잊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을 앞당겨야 한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레오나르도 다빈치#김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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