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과 협력해야 살 길 있다” 北에 분명한 메시지 전달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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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열쇠 ‘KI-디플로머시’를 찾아서]<下>南 하나되어 北 일깨우자

《북한과의 협상에 지친 미국을 이끌며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할 나라는 한국이다. 북한을 감싸온 정책을 바꿀지 고심하는 중국에 정책 전환의 명분을 줘야 할 나라도 한국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큰 나라들을…”이라는 관성적 회의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라는 확고한 오너십으로 주도적 전방위 외교를 적극 펼 때가 됐다. 일관되지도 않고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는 일회성 대북 메시지로 북한의 근본적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남남(南南) 갈등도 해결하지 못한 채 남북 문제를 주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북핵 문제를 풀 새로운 열쇠인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KI-Diplomacy)’는 ‘남한을 하나로 모아 북한을 일깨울 때’ 그 위력이 발휘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한국 주도의 전방위 외교인 키-디플로머시(KI-Diplomacy)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실질적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 대북정책의 실패를 분석해 △대북전략의 새 틀을 짜고 △북한을 일깨울 일관된 소통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협박에 굴복해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외교의 근간이다. 그런데 북한은 핵이나 미사일로 미국을 협박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이 간극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한국 정부의 중요한 몫”이라고 말했다.

○ 과거정부의 대북정책 반면교사로

‘어느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며 조건 없이 비전향 장기수를 송환할 만큼 전향적이던 김영삼 정부는 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무산되자 급격하게 보수화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금강산 관광과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뒷돈 지급’ 논란을 빚었다. 1, 2차 연평해전이라는 북한 도발 앞에 미온적 대처로 비난받았다.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도 남북관계 유지라는 강박 때문에 북한의 1차 핵실험 도발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중풍으로 쓰러지자 ‘북한의 붕괴가 머지않았다’는 섣부른 인식을 한 측면이 있다. 대북 원칙론자들의 그런 ‘희망적 사고’가 오판이었음은 이듬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으로 드러났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과거 진보 정권과 보수 정권의 이런 패턴을 정반합의 발상으로 뛰어넘는 ‘제3의 길’을 실천적으로 제시해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키-디플로머시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북핵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북한 내부에서 인권문제 눈뜨게 해야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대북 접근법의 새 틀과 관련해 “북한에 ‘핵실험하지 말라’ ‘추가도발하지 말라’고 경고만 하지 말고 북한이 국제 규범을 지키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따르도록 북한의 체질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체질이 바뀌려면 지도부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남북 대화의 창이 열려 있어야 한다. 교류와 접촉도 늘어야 한다. 한국이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려면 기아와 질병에 노출된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대북 인도적 지원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가 있다. ‘비정상’인 북한에 ‘정상으로 바꾸라’고 주문만 하지 말고 한국이 적극적으로 이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강 국립외교원 교수는 “앞으로 대북 관여정책은 오랜 시간에 걸쳐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대규모 경협보다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고루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소규모 협력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을 대하는 방식에도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한건주의, 깜짝쇼는 더이상 용납되기 어렵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011년 이명박 정부가 독일 베를린에서 ‘김정일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할 수 있고 그런 의사가 이미 북한에 전달됐다’고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대표적 실책”이라고 말했다. 설익은 언론플레이가 빚은 해프닝이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다른 당국자는 “남북 직접대화가 많을 때는 약간의 오해가 생겨도 금방 풀 수 있지만 경색 국면일 때는 정말 말조심을 해야 한다”며 “정제된 메시지가 대북특사 같은 일관된 메신저를 통해 전달돼야 북한이 경청한다”고 말했다.

○ “대미 대남 협박으로 얻을 건 없다”는 인식 일깨워야

북한이 갖고 있는 ‘북-미 직접대화만이 최상’이라는 통미봉남의 오랜 관념도 반드시 깨야 한다. ‘북-미 2·29 합의’를 이끈 글린 데이비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인공위성도 미사일로 간주되니 절대 발사해서는 안 된다고 3번이나 다짐을 요구했고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알았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고 한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그러나 미국은 ‘알았다’를 ‘미국에 동의한다(I agree)’는 뜻으로 받아들인 반면에 북한은 ‘당신 처지를 이해한다’는 정도로 전달한 것 같다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다. 이런 오해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4월 북한이 미사일(북한 주장으로는 인공위성) 발사를 강행했고 2·29 합의는 공중분해됐다.

전직 미 국무부 관리는 “북-미 간 뉴욕 채널에서 여러 차례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했지만 한 번도 속 깊은 얘기를 나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남한이 북한에 인권 존중, 도발 중단을 요구하는 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북한에도 이득이 되는 정상국가로 가는 길’이란 점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국책기관 연구원은 “고립경제로 외자 도입이 끊긴 북한 체제가 최종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며 “북한이 정상국가로 체질을 바꿔나간다면 남한이 적극 도울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주도의 키-디플로머시를 통해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도 북한에 같은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내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은 “북한이 ‘우리가 사는 길이 남북관계에 있다’고 깨닫는 순간 북핵 문제 해결의 새로운 열쇠가 작동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남북#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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