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1> 일본 구마모토현 구로카와 온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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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인데도 초록빛을 잃지 않은 상록의 나무로 둘러싸인 이 따뜻한 로텐부로 온천탕에서 구마가이 씨 모녀는 오랜만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스스로가 나를 낫게 하는 치유를 뜻하는 힐링은 바로 이런 행복감이 그 원천 아닐까. 구로카와온천에 있는 료칸 산가(山河). 구로카와=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한겨울인데도 초록빛을 잃지 않은 상록의 나무로 둘러싸인 이 따뜻한 로텐부로 온천탕에서 구마가이 씨 모녀는 오랜만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스스로가 나를 낫게 하는 치유를 뜻하는 힐링은 바로 이런 행복감이 그 원천 아닐까. 구로카와온천에 있는 료칸 산가(山河). 구로카와=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힐링(Healing)이란 무엇일까. 타인에게 내맡기는 ‘치료(治療)’가 아니다. 나 스스로 낫게 하는 ‘치유(治癒)’다. 치료는 대증(對症)적이다. 신속과 효율이 미덕이다. 반면 치유는 근원(根源)적이다. 느리고 포괄적이다. 치유의 ‘병 나을’ 유(癒)자를 보자. ‘병’ 녁()과 ‘나을’ 유(愈)로 구성된다. 그 유(愈)는 다시 ‘점점…하다’는 ‘유(兪)’와 마음 ‘심(心)’으로 이뤄진다. 해석하자면 ‘병의 근원인 마음(정신)까지 나아지게 한다’는 의미다. 영어도 의미는 한자와 같다. 사전적으로 ‘make a whole(건강을 이룬다)’인데 ‘건강’을 뜻하는 ‘홀(whole)’은 그 자체로 ‘heal(건강)’에서 왔다. 그러니 힐링의 참뜻을 헤아리자면 ‘전체’라는 ‘홀(whole)’의 의미부터 헤아려야 한다. 그 ‘홀’은 자동차 엔진과 같은 한 덩어리다. 부속 한 개라도 빠지면 모두가 쓸모없게 되는…. 그러니 ‘건강을 이룬다’는 말은 태어날 때 모습의 완벽한 상태로 육체와 정신을 되돌려 놓음, 즉 ‘회복’이다. 》

그런 치유의 핵심은 ‘스스로’와 ‘점점’이다. 낫게 한다는 점에선 치유도 치료와 다를 바 없다. 그렇긴 해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낫게 한다는 점에서 완벽히 차별된다. 치료든 치유든 궁극의 목표는 ‘회복’이다. 그걸 위해 현대의학은 병리현상의 해소―치료―에 집중해 왔다. 그러다 보니 원인 규명은 물론, 치료법을 찾지 못해 병을 안고 살아가는 이에게는 그 한계를 극명히 드러낸다. 치유가 그 너머의 특별함으로 간주되는 건 그 덕분이다.

그런 면에서 여행, 그중에서도 자연을 찾는 여행은 치유의 온당한 수단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스릴 좋은 기회다. 또 자연과 교감을 통해 영혼을 가다듬고 그걸 통해 신체의 조화와 건강 증진을 도모할 수 있어서다. 오늘부터 연재하는 ‘힐링투어’는 그런 ‘자연을 통한 치유’를 추구한다. 스파와 온천, 숲과 나무, 산과 바다, 강과 호수 등 치유에 도움이 될 여러 다양한 주제를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선다. 이런 여행이 스스로 건강을 도모하는 치유의 길로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 <편집자>

산큐패스로 떠난 규슈 버스여행

구로카와온천은 이렇듯 예스러운 모습의 마을과 거기서 풍기는 고적한 분위기로 이름났다.
구로카와온천은 이렇듯 예스러운 모습의 마을과 거기서 풍기는 고적한 분위기로 이름났다.
오전 10시 온천휴양지 유후인(오이타 현) 역 앞 버스센터. 나는 니시테쓰(西鐵·후쿠오카 현을 기반으로 규슈의 철도 버스 호텔 상가 유통을 아우르는 대형 그룹)의 ‘규슈 횡단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일본 최대 온천타운 벳푸(오이타 현)와 규슈의 중심인 구마모토(구마모토 현)를 대각선으로 오가는 시외버스다. 일본에서 버스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처음이다. 철도망이 잘 발달한지라 열차 외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규슈만큼은 버스가 철도보다 훨씬 편리하고 저렴하단 걸 알게 됐다. 버스도 출발과 도착이 정확하며 안전도 기대 이상-천천히 달려서-이었다. 그러니 규슈에선 버스노선을 보며 목적지를 정해 여행한다면 시간과 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취재엔 니시테쓰의 ‘산큐패스’(기타큐슈 3일권)를 선택했다. 저렴(6000엔·약7만 원)한 건 물론이고 유후인과 구로카와 온천(일본 3대 온천 가운데 하나·구마모토 현), 아소 산 분화구를 산큐패스로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두루 이어주어서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유후인은 직행버스가, 유후인에서 구로카와(黑川)는 횡단버스가 구주(九重) 산을 종단해 단 87분 만에 데려다 준다. 아소 산은 구로카와에서 구마모토로 가는 도중 지나는데 친절하게도 관광로프웨이 역에 90분간 정차-점심 식사 후 나카다케 분화구를 관광하도록-한다.

만약 JR패스로 다녔다면 비용은 고사하고 이동시간이 곱절 이상 들었을 터이다. 왜냐면 구로카와에는 철도역이 없어 유후인∼구로카와, 구로카와∼아소 산 분화구 구간은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야 하기 때문이다.

구로카와에는 구로카와가 없다

구주 산은 ‘규슈의 지붕’으로 일컫는 고원산악이다. 유후인은 그 고원의 북쪽에, 구로카와는 그 남서쪽에 있다. 그리고 두 온천마을은 고원의 서편 산자락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오이타 현도 11호선이 잇는다. 해발 420m의 유후인을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 내내 고원의 산등성을 오르기만 한다. 그 정점은 마키노토 고개(해발 1320m). 내리막길로 접어드니 세노모토 고원이 펼쳐지는데 온천마을 구로카와는 여기서 10여 분 거리의 해발 700m 계곡 안에 있다.

벳푸 유후인 구로카와 아소산 구마모토를 오가는 니시테쓰의 규슈 횡단버스. ‘산큐패스’로 탈 수 있다는 대형 스티커가 붙어 있다.
벳푸 유후인 구로카와 아소산 구마모토를 오가는 니시테쓰의 규슈 횡단버스. ‘산큐패스’로 탈 수 있다는 대형 스티커가 붙어 있다.
버스가 선 곳은 국도 442호선 내리막길의 구로카와 온천 정류장. 그런데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비탈 아래로 좁은 포장도로만 보이는데 그 초입에 ‘구로카와 온천’ 팻말이 세워져 있다. 그 길로 100m쯤 내려왔을까. 고색창연한 목조건물이 길가에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료칸이다. 좀더 내려가니 계곡과 그걸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인다. 그리고 식당 료칸 상점 등 낡고 자그만 목조건물이 물가 축대의 좁은 길을 끼고 촘촘히 들어서 있다. 도대체 평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계곡 비탈의 물가. 구로카와 온천마을은 이렇듯 철저하게 숲과 계곡에 숨겨져 있다.

일본에선 ‘강(江)’을 ‘가와(川)’로 표기한다. 그러니 구로카와는 ‘흑강(黑江)’이다. 나는 계곡물이 구로카와이려니 짐작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건 다노하루 강이다. 구로카와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그런 강이 여기엔 없다는 것이다. 요즘 세간의 표현으로 ‘헐∼’.

힐링의 숲과 물, 온천 그리고 료칸

100년도 더 된 긴 역사의 일본 여성잡지 ‘부인화보’는 ‘온천의 기적’이란 특집에서 이렇게 썼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 찌꺼기를 털어낼 수 있는 곳, 나의 본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고 또 자주 가고 싶은 곳이라면 온천이 최고가 아닐까라고. 그러면서 △속세를 떠나 △공기 속 먼지와 거리의 찌꺼기로 오염된 폐를 깨끗이 씻어 낼 것 같은 숲 속에서 △좋은 미네랄이 많이 함유된 물이 용출하는 ‘온천’을 꼽았다.

이걸 기준 삼아 내가 다녀본 무수한 일본 온천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구로카와라고 말하겠다. 이유는 많다. 아름다운 숲, 청정한 계곡, 풍부한 수량, 좋은 성분의 온천수, 예스럽고 고적한 분위기 등등. 하지만 이런 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른 온천에도 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구로카와 이외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들 것이다. ‘물 흐르는 소리’다. 계곡가의 스물네 곳 료칸 중 몇 곳만 빼고는 모두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노천욕을 즐긴다. 자연의 소리가 주는 치유(힐링) 효과는 대단하다.

최근 구로카와온천의 명물이 된 ‘도라도라야키’ 가게.
최근 구로카와온천의 명물이 된 ‘도라도라야키’ 가게.

그중에서도 특별한 곳은 계곡 상류의 야마미즈키와 미사토(이상 료칸)다. 이곳의 로텐부로(노천탕)는 다른 료칸과 다르다. 계곡물 바로 옆에, 차단막도 없어 자연과 한 공간을 이룬다. 야마미즈키의 여성 전용 로텐부로엔 물가에 산책로까지 있어 풍욕(바람목욕)도 즐긴다. 이 계곡은 청정 그대로다. 반딧불이 날아다닐 정도다. 상상해 보라. 한여름 녹음 짙은 계곡의 숲에서 새들의 노랫소리에 계곡물 흐르는 소리, 바람이 수풀 스치는 소리에 반딧불의 불빛까지 즐기는 청정자연 속 노천 온천욕의 즐거움을. 오직 구로카와에서만 만날 수 있는 호사다.

300년 역사의 료칸, 오카쿠야에서 하룻밤

구로카와 계곡 초입의 이 고풍스러운 료칸. 이 동네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료칸이다. 현재는 19세기 후반 매입한 사람의 7대손이 운영 중인데 그런 오랜 역사만큼이나 분위기도 고답적이다. 건물은 계곡 가의 축대에 건축돼 모든 온천탕은 계곡 가장자리에 자리 잡았다. 내가 이 료칸에 묵은 데는 이유가 있다. ‘혼진(本陣)’이라서다. ‘혼진’이란 ‘산킨코다이’(參勤交代·봉건시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으로 각 번의 영주가 의무적으로 에도를 방문해 머물던 제도)를 위해 행차할 때 구마모토 번의 영주가 늘 묵던 숙소. 그런 혼진은 전국에 있는데 이게 료칸의 원형이다.

현관에는 이로리(일본식 화톳불)가 놓였고 삐걱대는 나무계단으로 한 층을 내려가면 계곡물 소리가 들려오는 실내 탕과 로텐부로가 있다. 탕은 하나같이 유구한 역사를 웅변하듯 고풍스럽다. 수질도 탕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런 예스러운 모습은 구로카와 온천의 특색으로 1970년대 쇠락한 이곳을 재건할 때 주민 스스로 선택한 주제다.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이것 덕분에 구로카와는 일본 3대 온천의 반열에 올랐다.

▼ 버스노선 한글로 안내 규슈 마음놓고 오세요
, 서일본철도 시미즈 씨 ▼

“최지우 씨 좋아합니다.”

2004년 ‘후유노소나타(겨울연가)’를 통해 한국 사랑에 빠진 니시테쓰(서일본철도사)의 시미즈 노부히코 자동차 사업본부 부본부장(54·사진)은 기자를 보자 한국어로 이렇게 인사했다. 당시 과장이던 그는 휴가까지 내 부산에 가서는 버스정류장을 살핀 뒤 하카다 항(후쿠오카 시) 버스정류장부터 한글 안내문을 붙이기 시작했다. 후엔 국토교통성과 후쿠오카 시도 참가해 시내정류장으로 확대됐다.

“일본어로만 쓰여 있으니 한국인이 우왕좌왕할 수밖에요. 그래서 시작한 건데 그 덕에 한국어도 배우고 매운 음식도 좋아하게 됐습니다. 한국을 사랑합니다.”

최근 그는 규슈 버스여행 알리기에 나섰다. 후쿠오카는 물론이고 규슈 전체를 커버하는 니시테쓰의 광대한 버스연계노선(2400개)을 활용해 한국인이 저렴하고 효과적으로 목적지를 오가도록 하는 것. 그걸 위해 창사(1908년) 이래 처음으로 한국인 직원까지 채용했다.

“이젠 규슈도 편리한 버스로 여행하세요.” 이게 그의 당부다.

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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