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서울 광평교 ‘멘붕 교차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직진금지 표지판에 직진신호… 이름은 사거리 실제론 육거리
사고 부르는 미로 사거리

① 수서방면 진입로. 빨간불일 때는 성남 방면으로 우회전을 할 수 없지만 이를 가리키는 표지판 글씨가 작아 알아보기 힘들다. ② 잠실방면 진입로. 정면의 탄천 둑길로는 직진금지이고 왼쪽으로 틀어진 성남 방면으로 직진해야 한다. 직진금지 화살표와 직진을 알리는 녹색불이 가까이 붙어있어 불법 직진하는 차량들이 정면충돌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높다. ③ 성남 탄천 둑길 방면 진입로. 좌회전과 유턴만 가능. 불법인 직진이나 우회전을 감행하는 차량이 속출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① 수서방면 진입로. 빨간불일 때는 성남 방면으로 우회전을 할 수 없지만 이를 가리키는 표지판 글씨가 작아 알아보기 힘들다. ② 잠실방면 진입로. 정면의 탄천 둑길로는 직진금지이고 왼쪽으로 틀어진 성남 방면으로 직진해야 한다. 직진금지 화살표와 직진을 알리는 녹색불이 가까이 붙어있어 불법 직진하는 차량들이 정면충돌 사고를 일으킬 위험이 높다. ③ 성남 탄천 둑길 방면 진입로. 좌회전과 유턴만 가능. 불법인 직진이나 우회전을 감행하는 차량이 속출한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막상 현장을 취재하고 나니 기사 쓸 자신이 싹 사라졌다. 운전하면서 마주친 적 없는 6거리인 데다 눈앞에 멀쩡하게 도로가 나 있는데도 ‘직진 금지’ ‘우회전 금지’ 표지판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어느 쪽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신호등은 이곳저곳 설치돼 그야말로 미로 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1월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수서역 방면(그래픽 지점 ①)에서 진입한 광평교 교차로의 모습이다. 기자는 당황했다. 목적지로 설정한 경기 성남으로 가려면 우회전해야 했다. 도로는 멀쩡한데 우회전 금지 화살표가 나타났다. 당황해 멈춰 섰지만 앞 차량은 줄줄이 우회전했고 뒤차는 경적을 울려댔다. 우회전 금지 표지판 옆에 작은 글씨로 ‘적신호 시 훼미리A(아파트) 방향’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느 쪽 신호를 보고 우회전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상향등을 번쩍이는 뒤차에 떠밀려 기자 역시 스르르 반칙운전에 동참하고 말았다.

○ 미로 같은 도로, 직진도 어렵다

장택영 수석연구원(오른쪽)과 김동명 경위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광평교교차로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비정상적인 도로 구조가 운전자를 반칙운전과 사고 위험에 노출시킨다”며 도로 선형 개선을 주문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장택영 수석연구원(오른쪽)과 김동명 경위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광평교교차로 인근 아파트 옥상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비정상적인 도로 구조가 운전자를 반칙운전과 사고 위험에 노출시킨다”며 도로 선형 개선을 주문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본보 ‘시동 꺼! 반칙운전’ 취재팀은 이날 삼성교통문화연구소 장택영 수석연구원, 송파경찰서 교통조사계 김동명 경위와 함께 광평교 교차로를 찾았다. 송파대로가 연결되고 성남시 분당에서 서울로 진입하기 위한 길목이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이곳에서 교통사고 44건이 발생해 81명이 다치고 1명이 숨져 ‘사람 잡는 도로’라고 불리지만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광평교 교차로에선 수서 방면 6차로와 가락시장역 방면 7차로가 만난다. 좌우로는 잠실 방면 4차로와 성남 방면 5차로가 맞물려 있다. 여기에 탄천 둑길로 이어지는 차로가 더 있다. 모두 합쳐 26개 차로가 만나는 거대한 6거리다.

잠실에서 진입(그래픽 지점 ②)하는 초행길 운전자들은 당황한다. 정면에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직진에 가까운 오른쪽에는 직진 금지 표지판이 붙어있고 좌회전 느낌을 주는 왼쪽 도로에 녹색불이 켜진다. 직진 신호가 들어와도 차량들이 멈칫하는 이유다. 미로 같은 이 도로의 규칙에 따르자면 좌회전 비슷한 방향으로 ‘직진’해야 한다. 말이 직진이지 좌, 우로 핸들을 꺾어야 하는 기형 운전 아니면 지나갈 수 없다. 눈에 보이는 대로 직진하다 보면 충돌 사고가 발생하기 십상이다.

○ 운전자는 애간장 서울시는 팔짱

성남 쪽 탄천 둑길에서 교차로에 진입(그래픽 지점 ③)하면 더 황당하다. 직진(잠실 방면)도 우회전(가락시장역 방면)도 모두 금지다. 이곳에선 수서 방면으로 좌회전하든지 오른쪽 경계석을 끼고 U턴해야 올바른 운전이다. 취재팀이 20분 동안 지켜보는 새 10대가 불법 우회전을 감행했다. 맞은편 차량과 충돌할 뻔한 장면이 연출됐고 그때마다 긴 경적이 울렸다. 장 수석연구원은 “나란히 달리는 탄천 둑길과 기존 도로를 합쳐 넓은 간선도로를 만들면 해결될 문제가 수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차로 개선 사업 권한과 예산을 쥐고 있는 서울시는 방관하는 태도다. 시는 이곳을 ‘사고 잦은 곳’으로 분류했지만 구체적인 개선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내년 7월까지 설계를 마치겠다”고 밝혔을 뿐 실제 언제 도로가 개선될지 알 수 없다. 김 경위는 “잘못된 도로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반칙운전도, 곡예운전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운전자를 혼란과 위험의 미로 속에 빠뜨리는 ‘반칙 도로’가 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택·김성규 기자 nabi@donga.com

#광평교#교차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