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셋잇단음표로 운명을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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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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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말러-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의 공통점은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17, 18일 베토벤의 교향곡 5번(1808년)을 연주합니다. 같은 기간 창원시립교향악단은 정치용 지휘로 말러의 교향곡 5번(1902년)을 연주합니다. 김대진의 수원시립교향악단은 예술의전당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 일환으로 올해 차이콥스키 작품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첫날인 2월 20일에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1888년)을 연주합니다. 세 곡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세 곡 모두 ‘교향곡 5번’이라는 겁니다. 하나가 더 있습니다. ‘암흑에서 광명으로’라는 서사적 상징에 가장 충실한 교향곡이라는 점입니다.

난청과 실연 등의 개인적 역경을 극복한 ‘음악의 성자’ 베토벤이 ‘불멸의 아홉’ 교향곡 중 한가운데 위치한 작품을 역경을 이겨낸 위대한 승리의 드라마로 엮어내자 후배 교향곡 작곡가들도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외도 있지만 시벨리우스, 쇼스타코비치 등 많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5번’을 영웅적 승리 드라마로 엮어내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베토벤과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은 또 다른 공통분모로 묶입니다. ‘운명’입니다. 알려졌다시피 베토벤 5번 교향곡 첫머리의 셋잇단음표에 대해 그의 제자 안톤 신들러는 스승이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고 표현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나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는 다른 가설을 제시합니다. 베토벤이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혁명가요의 음형(音形)을 이 작품에 집어넣었다는 거죠. 가디너가 진행하는 다큐멘터리를 유럽에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가도 나왔는데, 셋잇단음표 음형 자체만이 아니라 이 음형이 여러 성부에서 경쟁하듯 튀어나오는 모습도 유사했습니다.

이와 달리 차이콥스키는 실제 ‘운명’이라는 화두에 몰두한 작곡가였습니다. 자신의 5번 교향곡 시작 주제에 대해서도 ‘운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주제는 마지막 악장 끝부분에 승리의 행진곡으로 모습을 바꿉니다.

베토벤과 말러의 ‘5번’ 사이에도 역시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말러의 5번도 셋잇단음표로 시작합니다. 이 때문에 말러가 이 교향곡에서 ‘운명’을 표현하려 했다는 가설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군대 막사 근처에서 자라난 말러는 초기 작품부터 셋잇단음표로 시작하는 트럼펫의 팡파르를 자주 삽입했습니다.

차이콥스키도 ‘이름난 셋잇단음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이나 악장을 시작할 때가 아니라 끝을 맺을 때 사용한 셋잇단음표입니다. 5번 교향곡에서는 4악장, 6번 교향곡에서는 3악장 끝부분에 사용했고, 발레 ‘호두까기 인형’ 1막 끝부분에도 이 음형을 길게 늘여 사용했습니다. 작곡가로서 일종의 ‘지문’ 같은 것이랄까요.

유윤종 gustav@donga.com
#암흑에서 광명으로#베토벤#말러#차이콥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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