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34>썰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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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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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깡깡 언 강에서 썰매를 타고 얼음을 지치는 풍경은 이제 흑백사진처럼 아련합니다. 지금은 잘 얼지 않는 한강이지만 조선시대 글을 보면 한강에서 썰매를 탄 기록이 제법 보입니다.

조선시대 썰매는 설마(雪馬)라 적었습니다. 원래 산악에서 사냥이나 운송을 위하여 사용했는데, 신즙(申楫)이 ‘쌩하니 눈 위의 말이, 유성처럼 빠르게 돌진하네. 처음 볼 때 산 위에 있더니, 어느새 아래에 내려와 있네(염염雪中馬 突如流星過 瞻之在山上 忽然而在下)’라고 한 것처럼 스키나 스노보드처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눈에 미끄러져 내려오는 썰매도 있었나 봅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깡깡 언 강 위에서 썰매를 탔습니다. 점잖은 선비들도 썰매를 즐겼습니다. 18세기 문인 조태억(趙泰億)이 용산에서 썰매 타는 모임이라는 뜻의 용산설마회(龍山雪馬會)를 조직한 적이 있으니 열성적인 썰매 팬이 제법 있었던 듯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썰매는 다소 퇴폐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신광수(申光洙·1712∼1775)의 시를 보면 그러합니다. 성인을 위한 썰매는 두 사람이 타게 되어 있었는데 주로 기생을 태웠던 모양입니다. 이보다 앞서 선조 임금의 부마였던 박미(朴(니,미))도 대동강에서 여인과 마주앉아 썰매를 탔다고 합니다. 신광수의 이 작품은 평양감사로 있던 채제공(蔡濟恭)을 위하여 108수 연작에 평양의 풍물을 노래한 것인데, 그중 한 편에 썰매 타는 풍속을 담았기에 이런 풍정이 그려질 수 있었습니다. 기생을 끼고 썰매에 앉아 있으면 아이 종이 말처럼 썰매를 끕니다. 선비의 눈이 돌고 다리가 떨리도록 빨리 끌어야 하였겠지요. 다른 하인들은 열심히 술과 안주를 나르고 악공은 풍악을 울렸겠지요. 글로 보고 웃고 말 일이지 따라 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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