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묵의 ‘한시 마중’]<23>따뜻한 차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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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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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달에 접어드니 하루하루 추워집니다.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습니다. 예전 선비들은 이럴 때 화로를 곁에 두고 차를 끓여 마셨습니다. 고려 말의 이숭인(李崇仁)은 “산속 조용한 방 안 밝은 창가에서 정갈한 탁자에 향을 피우고 스님과 차를 끓이면서 함께 시를 짓는 것이 제일 즐거운 일이라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런 스산한 날 세상이 시끄럽기까지 하니 저 역시 호젓한 산속의 집에서 따끈한 차를 한 잔 마시고 싶습니다.

19세기를 전후한 시기 이정주(李廷柱)라는 문인이 있었는데 김정희(金正喜)와 교분이 깊었던 이상적(李尙迪)의 종숙부입니다. 행적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선 문인들과 교분이 깊었던 주국인(周菊人)이나 오숭량(吳嵩梁) 등으로부터 “시가 맑으면서도 기발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작품이 바로 그러합니다.

호젓한 산속의 집에서 졸다 깨어났습니다. 오싹한 기운이 들었겠지요. 불기가 다소 죽은 화로를 뒤적여 차를 한 잔 끓여 마십니다. 밖을 내다보니 소나무 위에 둥근 달이 뜨고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들립니다. 이 맑은 빛과 소리가 깊어가는 산속의 아름다운 풍경을 이룹니다. 고려 말의 학자 이색(李穡)은 사계절 운치 있는 삶을 두고 “비단 같은 봄꽃은 내가 꺾고자 하는 것, 강물 같은 가을 달은 내가 좋아하는 것, 얼음덩이 깔아놓은 대자리는 내가 앉고 싶은 곳, 눈 녹인 물로 끓인 차는 내가 마시고 싶은 것(春花如錦我所折 秋月如波我所悅 氷峯竹점我所坐 雪水茶구我所철)”이라 하였습니다. 겨울에는 역시 눈 녹인 물로 차를 끓여 마시는 것, 이것이 최고인가 봅니다. 따끈한 차 한 잔에 이런 시를 읽노라면 몸이 따뜻하고 마음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시#따뜻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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