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주의 ‘삶과 죽음 이야기’]<14>이번 가을이 생의 마지막인 사람들을 위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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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주 칼럼니스트
최철주 칼럼니스트
말기 암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가 경기 고양시 일산 백석공원의 단풍나무 숲 속으로 들어간다. 3명의 호스피스 봉사자가 침대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뒤쪽 난간을 붙잡았다. 한 침대가 사라지면 그 다음 침대가 숲 속으로 굴러가고 또 다음 침대가 줄을 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꽂힌 거치대에는 링거와 항생제, 영양제 등 각종 의약품 튜브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 옆에 묶여 있는 산소병이 환자가 중병 상태에 있음을 알려준다. 단풍은 그들의 가을 나들이를 화려하게 만들었다.

말기암 환자들, 공원숲속 나들이


두꺼운 이불에 파묻힌 채 쑥 내민 환자들의 메마른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숲 속 놀이터에 나란히 배열된 10개의 침대 옆에서 봉사자들이 환자의 몸놀림을 돕기 위해 수시로 일으켜 세웠다가 눕히기를 반복했다. 다른 봉사자들의 진행 프로그램에 따라 호스피스 간호사들의 춤과 노래가 이어지고 목사, 신부, 스님의 멋들어진 가요가 옛 추억을 불러일으킬 때 환자들의 앙상한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봉사자들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닦아 냈다.

“오늘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더욱 호스피스 봉사자들의 정성이 필요합니다. 비록 소리조차 낼 수 없는 환우들도 있지만 그래도 마이크를 잡고 싶어 해요. 호흡 조절도 안 되고 가사도 자꾸 빼 먹는 바람에 우리가 끼어들어 도와주지요. 그들이 세상에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라 생각하고 흥을 돋워 주지요. 작년에도 가을 단풍놀이에서 한 곡조 겨우 부른 말기암 환자가 그 다음 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글자 그대로 마지막 여행이 되었습니다. 가족들도 눈물지으며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면 ‘아, 정말 내가 이런 봉사 활동을 하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까지 10년째 호스피스 환자들을 돕고 있는 서봉원 씨의 이야기이다. 냉동기와 공조기 설비사업을 하는 중소기업 사장으로 있으면서 오랜 기간 호스피스 교육과 실습을 거쳤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고 있는 일산병원에서 다른 봉사자들을 이끌고 있는 팀장이다.

호텔에서 보석감정사로 일하다 은퇴한 김진환 씨는 호스피스 교육을 이수한 후 염(殮·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힌 다음, 베나 이불 따위로 싸는 것) 봉사 활동을 위한 장례지도사 자격증까지 땄다. 지난 12년 동안 줄곧 호스피스 환자들을 지켜 왔다.

“무엇 때문에 힘든 봉사 활동을 하세요?”하고 그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이긴…. 아, 그게 내 삶의 보람이니까 그렇지요. 자꾸 저 사람들(말기암 환자들)을 존중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죽은 사람 염까지 하신다는데 그의 인생을 짐작할 수 있나요?”

“편하게 죽은 사람, 보기 사납게 죽은 사람 등 여러 층이 드러나지요.

봉사자들의 춤-노래에 눈물 흘려

염할 때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대강 느낌이 옵니다. 이 사람은 복 받으며 살아 왔다든가 또는 험한 길을 걸었다든가.”

“보석 감정과 인생 감정은 어떻게 다른가요?”

“보석은 결정체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진짜거든요. 그러나 아무리 진짜라도 돋보기를 들이대면 흠이 보입니다. 내가 비록 염 봉사를 하고 있지만 사람을 보석 감정하듯이 평가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인생의 흠을 살짝살짝 보게 됩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과 가족이 어려운 일을 겪은 후 어떤 간절함이 그들을 현장으로 달려가게 하는 일이 수두룩하다. 종교적 이유를 들고 나오는 경우도 많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 주고 싶어 하는 지극정성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났나 보다.

그러나 유행을 좇듯 봉사 활동을 찾아나서는 선남선녀들은 한 철도 견디지 못하고 호스피스 대오에서 낙오한다. 서봉원 씨는 그들을 싫어한다.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100여 명 시켜도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은 4, 5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말기 환자들의 죽음이나 아픔을 감당하지 못하니까요. 그게 이론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따뜻해야지요.”

호스피스 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영성 교수(일산병원 가정의학과)는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 말기 환자까지 치료를 맡고 있다.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환자 가족이 불안을 이기지 못할 때는 입원을 주선하고 봉사자들의 도움을 받도록 안내한다. “말기 환자를 위해서라면 가족이 그런 불안을 이겨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이 녹록지 않지요. 말기 환자를 일반 병원의 응급실로 데리고 가면 심폐소생술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해 의미 없는 연명치료에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니까 호스피스 제도를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일산병원의 어디를 가나 ‘호스피스 병동’을 안내하는 포스터가 눈에 띈다. 정부가 선정한 전국 40여 군데 주요 병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들 의료기관의 말기 환자 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2010년에 개정된 암관리법에는 ‘호스피스’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완화의료’라는 아주 낯선 어휘가 등장한다. ‘완화’ ‘의료’라는 두 개의 단어는 바늘에 실 가듯이 아예 붙여 쓰는 것이 병원 현장에서 관습화되었다.

라틴어에서 유래된 호스피스는 ‘주인과 손님 사이의 따뜻한 마음’에서 ‘마지막 삶의 편안한 마무리를 위한 총체적 돌봄’으로 쓰임새가 넓어졌다. ‘완화 의료’는 적극적인 간호와 통증 치료 등을 의미한다. 두 단어의 개념이 중복되는 부분이 많아서 환자나 가족 입장에서 보면 그 말이 그 말로 들린다. 그래서 모두들 우리나라에서 반세기 전부터 사용돼 온 ‘호스피스’에 익숙해 있다. 세계 각국에서 통용되는 생활언어이기도 하다.

‘호스피스’라는 말 못쓰게 해서야

그런데 정부나 국회가 관련법을 고치는 과정에서 호스피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죽음의 냄새’ 때문이라고 한다. 관계자들은 별개의 천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호스피스’ 대신 ‘완화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의료기관 의사들도 자기 병원에서 그런 진료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대학병원의 전화 교환조차 이런 식이다. “우리 병원에서 완화의료 치료를 한다고요? 그게 뭔데요?”

서울의 동네 의사들도 완화의료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흔하다. 호스피스라는 깃발이 내려진 뒤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호스피스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늘어나고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호스피스 깃발은 펄럭이고 있다.

최철주 칼럼니스트 choicj114@yahoo.co.kr
#삶#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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